시낭송행복플러스 2017. 11. 27. 09:08



눈사람

 

 이영옥


 

당신의 뒷모습은 갈수록 아름다워서 얼굴이 생각나지 않는다

 

편의점 앞에 반쯤 뭉개진 눈사람이 서 있다

털목도리도 모자도 되돌려주고

코도 입도 버리고 눈사람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다

 

순수 물질로 분해되기까지

우리는 비로 춤추다가 악취로 웅크렸다

지금은 찌그러진 지구만한 눈물로 서 있다

 

눈사람이 사라져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눈사람이 섰던 곳을 피해  걷는 것

 

당신을 만들어 나를 부수는 사이

뭉쳤던 가루가 혼자의 가루로 쏟아졌던 사이

사람은 없어지고 사람이 서 있던 자리만 남았다

우리가 평생 흘린 눈물은 얼마나 텅 빈 자리인지



                            ―《시산맥》 2017년 겨울호



이영옥/ 1960년 경북 경주 출생. 2004년《시작》신인상, 200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 시집 『사라진 입들』『누구도 울게 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