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낭송행복플러스 2016. 7. 28. 18:18



적막

 

  고영민

 

  

매년 오던 꽃이 올해는 오지 않는다

꽃 없는 군자란의

봄이란

 

잎새 사이를 내려다본다

꽃대가 올라왔을

멀고도 아득한 길

어찌 봄이 꽃으로만 올까마는

꽃을 놓친

너의 마음이란

 

봄 오는 일이

결국은 꽃 한 송이 머리에 이고 와

한 열흘 누군가 앞에

말없이 서 있다 가는 것임을

 

뿌리로부터

흙과 물로부터 오다가

끝내 발길을 돌려

왔던 길을 되짚어 갔을

꽃의 긴 그림자

 

 

              —《문학동네》2016년 여름호



고영민 시인 / 1968년 충남 서산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2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통해 등단. 시집『악어』『공손한 손』『사슴공원에서』『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