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기차/강은교
시낭송행복플러스
2017. 2. 16. 11:52
기차
강은교
봄이 오면 기차를 탈 것이다
꽃그림이 그려진 분홍색 나무의자에 앉을 것이다
워워워, 바람을 몰 것이다
매화나무 연분홍 꽃이 핀 마을에 닿으면
기차에서 내려
산수유 노란 꽃잎 하늘을 받쳐 들고 있는 마을에 닿으면
또 기차에서 내려
진달래빛 바람이 불면
또또 기차에서 내려
봄이 오면 오랜 당신과 함께 기차를 탈 것이다.
들불 비치는 책 한 권 들고
내가 화안히 비치는 연못 한 페이지 열어젖히며
봄이 오면 여기여기 봄이 오면
당신의 온기도 따뜻한 무릎에 나를 맞대고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여행을 떠날 것이다
은난초 흰 꽃커튼이 나풀대는 창가의 의자에 앉아
광야로 광야로
떠날 것이다, 푸른 목덜미 극락조처럼 빛내며
—《현대시학》2017년 1월호
강은교 / 1945년 함남 홍원 출생. 1968년 《사상계》등단. 시집『허무집』『풀잎』『빈자 일기』『소리집』『등불 하나가 걸어오네』『시간은 주머니에 은빛 별 하나 넣고 다녔다』『초록 거미의 사랑』『네가 떠난 후에 너를 얻었다』『바리연가집』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