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꿈결과같이/정현종
시낭송행복플러스
2017. 3. 22. 11:00
꿈결과같이
정현종
맑은 저녁 석양에
하늘의 구름이 발그레하여
너무 이뻐
그 빛깔 하나로
이 세상이 액면 그대로 딴세상인데,
다시
그 우주적 숨결의 가락
그 자연의 채색의 비밀 아래로
인간 석양 하나 걸어가면서
오래된 시간의 속삭임을 듣는다
오랜 시간의 지층이 그 스스로를 듣는 듯이.
그 속삭임은 깊은 눈동자
그 눈동자는 깊은 속삭임이거니
그러한 오래된 시간의 육체가 느끼는
마음 안팎 사물의 실감이여.
보는 일이 광활하여 아득하고
듣는 일이 또한 심연이며는
그 실감에 닿을 수도 있으리.
그렇게 안팎이 모두 아득한 데를
나는 걸어간다 꿈결과같이.
—《시인수첩》 2017년 봄호
정현종 / 1939년 12월 서울 출생. 연세대 철학과 졸업. 1965년 《현대문학》추천 완료(박두진 시인)로 등단. 시집『사물의 꿈』『나는 별아저씨』『떨어져도 튀는 공처럼』『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한 꽃송이』『세상의 나무들』『갈증이며 샘물인』『견딜 수 없네』『광휘의 속삭임』『그림자에 불타다』, 시선집『고통의 축제』『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이슬』, 시론 및 산문을 엮은 『날자, 우울한 영혼이여』『숨과 꿈』『생명의 황홀』『두터운 삶을 향하여』등. 연세대 국문과 교수로 정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