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딸기/고영민
시낭송행복플러스
2017. 4. 6. 08:20
딸기
고영민
한 겨울 어둠 속
비닐하우스 한 동이 하얗게
빛나고 있다
세인트버나드와 도사견의 혼혈인
투견 한 마리가
훈련용 러닝머신을 세 시간째
달리고 있다
주인은 천천히 컵라면의 남은 국물을
들이킨다
개는 달린다
옆을 막아놓은 러닝머신은
멈추기 전까지
무조건 달리도록 되어 있다
달리는 개의 귀와 얼굴과 다리에
찢긴 상처자국이 있다
옆 동의 비닐하우스에 딸기가 익어가고 있다
주인은 시계를 본다
싸워야 한다
물어야 한다
물면 놓지 말아야 한다
딸기가 익어가듯
개가 달린다
—《시와 사람》2017년 봄호
고영민 / 1968년 충남 서산 출생. 2002년 《문학사상》신인상으로 등단. 시집『악어』『공손한 손』『사슴공원에서』『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