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낭송가 활동/도봉구청 정오음악회
물에서 피다/권귀순
시낭송행복플러스
2017. 8. 6. 12:59
물에서 피다
권귀순
꽃차 봉지를 열고 말린 꽃을 꺼낸다
꽃잎마다 눈을 쓸어 감긴 듯
단단히 걸어둔 겹겹의 문
적막을 물에 넣는다
환히 반기는 물
적막을 깨우려고 가만가만 쓰다듬는
물의 자애로운 손
잔뜩 오므린 꽃잎을 부드럽게 핥아주는
물의 둥근 입
잠긴 기억의 빗장을 풀어보려고
소곤소곤 이름 불러주는데
방싯대며 나풀거리며
사부작, 사부작 물의 품에서 눈을 뜨는
재스민이 피어난다, 노랗게 피어난다
내 안에도 저런 물이 있다면
사랑도 시들기 전 꽃인 듯 말려두었다
다시 피웠으면 싶은데
생각을 툭, 치며 흩어지는
아, 재스민 향기
— 시집 『백년 만에 오시는 비』(시산맥사, 2017)
권귀순 / 서울 출생. 동국대학교 국문과 졸업. 2000년 《펜과 문학》2회 추천완료로 등단. 2002년 시집『오래된 편지』발간. 현재 메릴랜드 Rockville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