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환하다는 것/ 문숙
시낭송행복플러스
2017. 8. 14. 11:17
환하다는 것
문 숙
중심이 없는 것들은 뱀처럼 구불구불
누군가의 숨통을 조이며 길을 간다
능소화가 가죽나무를 휘감고
여름 꼭대기에서 꽃을 피웠다
잘못된 것은 없다
시작은 사랑이었으리라
한 가슴에 들러붙어 화인을 새기며
끝까지 사랑이라 속삭였을 것이다
꽃 뒤에 감춰진 죄
모든 시선은 빛나는 것에 집중된다
환하다는 것은
누군가의 고통 위에서 꽃을 피웠다는 말
낮과 밤을 교차시키며
지구가 도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돌고 돌아 어느 전생에서
나도 네가 되어 본 적 있다고
이생에선 너를 움켜잡고
뜨겁게 살았을 뿐이라고
한 죽음을 딛고 선
능소화의 진술이 화려하다
—《문학청춘》2017년 여름호
문숙 / 1961년 경남 하동 출생. 2000년 《자유문학》으로 등단. 시집 『단추』『기울어짐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