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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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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이 우는 밤/이준관

시낭송행복플러스 2020. 5. 17. 16:54

부흥이 우는 밤

 

이준관

 

 

돌이끼 푸른 성 터를

끼고 돌아

호랑거미 거미줄 타고 내려오고

달빛에 주둥이 흐늘히 젖어

부흥이 우는 밤이 있었다

 

개들이 짖어 대면 별이 떨어졌다

개의 귀에 대고 무슨 소리가 들려올까

들어보면 나의 귓속엔 푸른 별들이

가득 찼다

아랫녘 마을의 불빛들은 도토리열매처럼 열려

깨물면 떫은 맛이 들었다

 

나는 우물속을 들여다보았다

우물은 늙은 노새처럼 슬픈 눈을 가졌다

기다림에 지친

성터의 돌들을 주워

손에 쥐면 그대로 소리 없이 바스라져 버렸다

 

꽃 속에 숨은 두근거리는 천둥의 심장

죄 지은 듯 그 꽃잎 따먹고

나는 그리움을 지녔다

서러운 해오라기의 긴 모가지를……

 

 

 

이준관/1949년 전북 정읍에서 출생, 전주교대 및 고려대 교육대학원 졸업했다.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동시가, 1974년 《심상》 신인상에 시가 당선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대한민국 문학상, 방정환 문학상, 소천아동문학상, 김달진 문학상, 영랑시 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동시집으로 『씀바귀꽃』『우리나라 아이들이 좋아서』『내가 채송화꽃처럼 조그마했을 때』, 시집으로『열 손가락에 달을 달고』『부엌의 불빛』, 장편동화『눈이 딱 마주쳤어요』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