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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당나귀를 만나보셨나요 (외1편) 박미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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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당나귀를 만나보셨나요 (외1편) 박미산

시낭송행복플러스 2020. 6. 20. 17:23

흰 당나귀를 만나보셨나요 (2)

백석 시 풍으로

 

박미산

 

 

경복궁 지나

금천시장을 건너오면

흰 당나귀를 만날 거예요, 당신은

꽃피지 않는 바깥세상일랑 잠시 접어두고

몽글몽글 피어나는 벚꽃을 바라보아요

뜨거운 국수를 먹는 동안

흰 꽃들은 서둘러 떠나고

밀려드는 눈송이가

창문을 두드려요

펄떡이던 심장이 잔잔해졌다고요?

흰 당나귀를 보내드릴게요

혹한의 겨울을 무사히 지낸

푸릇푸릇했던 당신의 옛이야기를

타박타박 싣고 올 거예요

흰 당나귀가 길을 잃었다고요?

바람의 말과

수성동 계곡의 물소리를 따라오세요

불빛에 흔들리는 마가리가 보일 겁니다

우리 잠시, 흰 당나귀가

아주까리기름 쪼는 소리로

느릿느릿 읽어주는 시를 들어보자고요

 

 

꽃들의 발자국

 

 

아타카마 사막

아무도 살 수 없는 불모의 땅이었다

몇 천 년 만에 폭우가 내렸다

내 생애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넘실대는 활자를 품고

달의 계곡을 걷기 시작했다

 

모래 바람이 부풀고 있다

싹트던 문장들이 낙타 등에서 곤두박질쳤다

발길에 채이고 짓밟히며

죽음의 계곡으로 떨어졌다

찢어지고 젖어 알 수 없는 문자들

 

이름 한 번 얻지 못한 사막 깊은 곳에서

뜨겁게 달궈진 시가 훗날 발굴될 수 있을까

 

빗방울을 발목에 걸고

내일 또 내일을 걸어야겠다

흔적 없이 또 사라질지라도,

 

 

시집 흰 당나귀를 만나보셨나요(2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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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산 / 1954년 인천 출생. 2008세계일보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 시집 루낭의 지도』 『태양의 혀』 『흰 당나귀를 만나보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