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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책등의 내재율’/ 엄세원 본문
2021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책등의 내재율’
책등의 내재율
엄세원 (본명. 엄인옥)
까치발로 서서 책 빼내다가
몇 권이 기우뚱 쏟아졌다
중력도 소통이라고 엎어진 책등이
시선을 붙들고 있다
반쯤 열린 창문으로 햇살이
배슥이 꽂혀와 반짝인다 정적을 가늠하며
되비추는 만화경 같은 긴 여운,
나는 잠시 일긋일긋 흔들린다
벽장에 가득 꽂힌 책제목 어딘가에
나의 감정도 배정되었을까
곁눈질하다 빠져들었던 문장을 생각한다
감각이거나 쾌락이거나 그날 기분에 따라
수십 번 읽어도 알 수 없는
나라는 책 한 권,
이 오후에 봉인된 것인지
추스르는 페이지마다 깊숙이 서려 있다
벽 이면을 온통 차지한 책등
그들만의 숨소리를 듣는다
어둠을 즐기는 안쪽 서늘한 밀착, 이즈음은
표지가 서로의 경계에서 샐기죽 기울 때
몸 안의 단어들이 압사되는 상상,
책갈피 속 한 송이 압화 같은 나는
허름하고 시린 과거이거나 목록이다
나는 쏟아진 책을 주워 천천히 넘겨본다
벽은 참 출출한 비결(祕訣)이다
▲ 엄세원 씨 당선 소감
당선 소식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기쁘다. 올해의 기념으로 소양강이 내 품에 안기는 듯 했다. 카메라 속 한 컷이 마치 내 안을 담아낸 것 같아서 손끝이 아렸다. 하늘은 가만히 제 갈 길을 가는데, 나 혼자 별이었다가 구름이었다가 눈비가 되었던 적 있었다. 강이 품을 만큼만 여울을 남기듯, 이제 나는 물속에 잠긴 나무에서 수심을 덜어내야 한다. 얼마 전 다친 아들의 손을 이슥하도록 잡아주어야 한다. 푸른 건물 유리창 너머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그가 강물에 비친다. 당선의 기쁨이 아들과 나의 아픔을 천천히 거두어가고 있다고.
초석잠 자는 저를 밖으로 끌어주신 이영춘 선생님, 덤벙주초에 맞춰 詩살이 하는 저를 격려해주시는 중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 전문가과정 교수님들 문우님들 고맙습니다. 그리고 윤성택 마경덕 이종섶 선생님께도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시클 감사드리고, 같이 공부하는 문우님들, 중대포엣 식구들과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묵묵히 뒤에서 글의 원동력이 되어주는 남편과 주석 주화 고맙습니다. 전북도민일보, 제 부족한 작품을 심사해주신 소재호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더 정진하는 마음으로 시로써 따뜻해지겠습니다.
▲엄세원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 전문가 과정 수료
한국방송대학교 국어국문학과(文淵) 학술.문학 통합 대상
강원문학 시 부문 신인상
한국소비자연합 문화예술부 시문회 사임당문학상
홍성군 문화관광 디카시 대상
▲ 소재호 시인 심사평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응모 작품들 중에는 우수 작품이 많았다. 경향각지에서 모인 문재(文才)들의 재주가 예리하게 빛났다. 특히 「물다리기」「손말」「고수동굴에서」「멀티플렉스 상영관」「풍욕」「대장간 온도계」「코스모스」「마트료시카」등이 시의 품격을 높였다.
여러 편 중에서 「책등의 내재율」을 최종심에서 제일 좋은 작품으로 뽑고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이 작품은 발상부터가 참신했다. 그리고 구사하는 시어들이 신선했으며 이야기를 끌고 가면서 적절한 알레고리를 설정한 점이 좋았다.
‘책등’은 책의 제목이 새겨진 책의 모서리 표상인데, 이를 ‘내재율’이란 어휘로 묶어 놓아 어휘 상호간 절묘한 아이러니를 품는다. 피상적이고 관념적인 의미의 외연과 책의 안 섶에 꽂힌 섬세한 율성(律性)을 결부시키는 조합은 시의 상징화에 기여한다. 책들은 상호 연대하여 어둠을 빚고 다시 어둔 벽과 암유된 정서를 공유한다. 미명(未明)의 책 갈피갈피는 시적 자아의 생(生)으로 융합을 꾀한다. 감춰진 책 속의 비의는 자아의 잠재의식과도 연계된다. 자아의 감성과 지성의 영혼은 책 속에 압화(押花)로 묻혀 있다가 서서히 빛에게로 나아간다. 출출한 비결(秘訣)이다.
소재호(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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