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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리며/이승하

시낭송행복플러스 2021. 5. 10. 07:17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리며/이승하

시낭송 이서윤

 

 

 

작은 발을 쥐고 발톱 깎아드린다

일흔다섯 해 전에 불었던 된바람은

내 어머니의 첫 울음소리 기억하리라

이웃집에서도 들었다는 뜨거운 울음소리

 

이 발로 아장아장

걸음마를 한 적이 있었단 말인가

이 발로 폴짝폴짝

고무줄놀이를 한 적이 있었단 말인가

뼈마디를 덮은 살가죽

쪼글쪼글하기가 가뭄못자리 같다

굳은살이 덮인 발바닥

딱딱하기가 거북이 등 같다

 

발톱 깎을 힘이 없는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린다

가만히 계세요 어머니

잘못하면 다쳐요

어느 날부터 말을 잃어버린 어머니

고개를 끄덕이다 내 머리카락을 만진다

나 역시 말을 잃고 가만히 있으니

한쪽 팔로 내 머리를 감싸 안는다

 

맞닿은 창문이

온몸 흔들며 몸부림치는 날

어머니에게 안기어

일흔다섯 해 동안의 된바람 소리 듣는다.

 

 

이승하/1960~. 경북 의성 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문학박사). 1984'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으로 등단.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 시집으로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인간의 마을에 밤이 온다', '취하면 다 광대가 되는 법이지' 등이 있고, 시론집으로는 '한국 현대시에 나타난 10대 명제', '세계를 매혹시킨 불멸의 시인들', '한국 시문학의 빈 터를 찾아서',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