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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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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부족한 저녁 - 나희덕

시낭송행복플러스 2014. 10. 1. 11:59

 

무언가 부족한 저녁

나희덕

 

 

여기에 앉아보고 저기에 앉아본다

컵에 물을 따르기도 하고 술을 따르기도 한다

 

누구와 있든 어디에 있든

무언가 부족하게 느껴지는 저녁이다

무언가 부족하다는 것이 마음에 드는 저녁이다

 

저녁에 대한 이 욕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교차로에서, 시장에서, 골목길에서, 도서관에서, 동물원에서

오래 오래 서 있고 싶은 저녁이다

 

빛이 들어왔으면,

좀더 빛이 들어왔으면, 그러나

남아 있는 음지만이 선명해지는 저녁이다

 

간절한 허기를 지닌다 한들

너무 밝은 자유는 허락받지 못한 영혼들이

파닥거리며 모여드는 저녁이다

 

시멘트 바닥에 흩어져 있는 검은 나방들,

나방들이 날아오를 때마다

눅눅한 날개 사이로 붉은 겨드랑이가 보이는 저녁이다

 

무언가, 아직 오지 않은 것,

덤불 속에서 낯선 열매가 익어가는 저녁이다

 

 

 

   - 시집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문학과 지성사 2014)

 

 

나희덕 시인/ 1966년 2월 8일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뿌리에게'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왔다.
시집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곳이 멀지 않다', '어두워진다는 것'등을 발표했으며,
시론집 '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를 출간했다. 김수영문학상 · 김달진문학상 ·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현재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