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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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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집 - 이용악

시낭송행복플러스 2014. 10. 6. 08:24

낡은 집

이용악

 

 

날로 밤으로
왕거미 줄치기에 분주한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이 집에 살았다는 백성들은
대대손손에 물려줄
은동곳도 산호관자도 갖지 못했느니라.


재를 넘어 무곡을 다니던 당나귀
항구로 가는 콩실이에 늙은 둥글소
모두 없어진 지 오랜
외양간엔 아직 초라한 내음새 그윽하다만
털보네 간 곳은 아무도 모른다.

찻길이 뇌이기 전
노루 멧돼지 쪽제비 이런 것들이
앞뒤 산을 마음 놓고 뛰어다니던 시절
털보의 셋째 아들은
나의 싸리말 동무는
이 집 안방 짓두광주리 옆에서
첫 울음을 울었다고 한다.

"털보네는 또 아들을 봤다우
송아지래두 불었으면 팔아나 먹지"
마을 아낙네들은 무심코
차가운 이야기를 가을 냇물에 실어보냈다는
그날 밤
저릎등이 시름시름 타들어가고
소주에 취한 털보의 눈도 일층 붉더란다.

갓주지 이야기와
무서운 전설 가운데서 가난 속에서
나의 동무는 늘 마음 졸이며 자랐다.
당나귀 몰고 간 애비 돌아오지 않는 밤
노랑 고양이 울어울어
종시 잠 이루지 못한 밤이면
어미 분주히 일하는 방앗간 한 구석에서
나의 동무는
도토리의 꿈을 키웠다.

그가 아홉 살 되던 해
사냥개 꿩을 쫓아다니던 겨울
이 집에 살던 일곱 식솔이
어디론지 사라지고 이튿날 아침
북쪽을 향한 발자욱만 눈 우에 떨고 있었다.

더러는 오랑캐령쪽으로 갔으리라고
더러는 아라사로 갔으리라고
이웃 늙은이들은 모두 무서운 곳을 짚었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제철마다 먹음직한 열매
탐스럽게 열던 살구

살구나무도 글거리만 남았길래
꽃피는 철이 와도 가도 뒤 울안에
꿀벌 하나 날아들지 않는다.

 

 

  -(『리얼리즘의 시정신 최두석 평론집』 2010 실천문학사)

 

이용악 / 1914. 11. 23 함북 경성~ 1971. 2. 15. 시인. 그의 집안은 여러 대에 걸쳐 국경을 넘나드는 상업에 종사했으며, 줄곧 궁핍한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경성보통학교를 거쳐 1938년 도쿄[東京]에 있는 죠치대학[上智大學] 신문학과를 졸업했으며, 재학시절 김종한과 동인지 〈이인 二人〉을 펴냈다. 형 억(億)과 동생 용해(庸海)도 〈신인문학〉·〈국민문학〉 등에 시를 발표한 바 있다.

1939년 귀국해 〈인문평론〉 편집기자로 근무했고, 1942년 6월까지 〈조선일보〉·〈춘추〉 등에 시를 여러 편 발표했다. 8·15해방 후 〈중앙신문〉 기자로 있으면서 1946년 2월 8~9일 조선문학가동맹이 개최한 제1회 전국문학자대회에 참가한 인상기를 남겼다. 같은 해 3월 윤곤강과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회 시부(詩部) 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뒤 모종의 사건에 연루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6·25전쟁중 월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35년 〈신인문학〉 3월호에 시 〈패배자의 소원〉을 발표하여 문단에 나왔으며, 1937년 도쿄 삼문사에서 첫시집 〈분수령〉과 1938년 제2시집 〈낡은 집〉을 펴냈다. 1949년 시 〈오월에의 노래〉가 오장환의 시 〈병든 서울〉, 이태준의 소설 〈해방전후〉와 함께 해방기념 조선문학상 후보로 추천되었다. 이어 제3시집 〈오랑캐꽃〉(1947)을 펴냈고, 1949년 1월 동지사에서 현대시인전집의 제1집으로 〈이용악집〉이 나왔다. 그의 시는 북국 유랑 체험과 가난, 노동으로 지탱했던 유학 체험이 바탕을 이룬다. 초기에는 일제의 수탈로 황폐해진 고향을 배경으로 한 〈북국의 가을〉(조선일보, 1935. 9. 26)·〈두메산골〉(순문예, 1939. 8) 등을 발표했고, 이어 만주 등지를 유랑하는 한민족의 피폐한 삶을 탁월한 시어로 형상화한 〈오랑캐꽃〉(인문평론, 1939. 10)·〈전라도 가시내〉(시학, 1940. 8) 등을 발표했다.

 

8·15해방 후에는 새나라 건설로의 열려진 가능성과 투쟁을 노래한 〈거리에서〉(신천지, 1946. 12)·〈빗발 속에서〉(신세대, 1948. 1) 등을 발표해 민족시의 다양한 진로를 모색하기도 했다. 월북 후 1952년 조선문학동맹 시분과 위원장, 1956년 조선작가동맹 출판사 부주필로 근무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실현한 유명한 서정시 〈평남관개시초〉(조선문학, 1956. 8)와 가사 〈땅의 노래〉(문학신문, 1967) 등을 발표했다. 그밖의 시집으로 북한에서 〈이용악 시선집〉(1957), 남한에서 〈이용악 시전집〉(1988)·〈북쪽은 고향〉(1989)·〈두만강 너 우리의 강아〉(1989) 등이 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