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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의 강/마종기 본문
우화의 강
마종기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서로 물길이 튼다.
한 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이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 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겠지만
한 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 잠이 어렵지 않는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 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마종기/1939년 1월 17일 출생. 대한민국의 시인, 소설가, 영상의학과 의사, 대학 교수이다. 본관은 목천(木川). 부드러운 언어로 삶의 생채기를 어루만지고 세상의 모든 경계를 감싸 안는 시인이다. 1939년 일본 도쿄에서 동화작가 마해송과 무용가 박외선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바닷가에 앉아 혼자 동시를 쓰기 시작했던 소년은 중학생 시절부터 일약 ‘학원’ 문단의 스타가 되어 친구들의 연애편지 대필을 도맡는 등 타고난 시인의 재능을 맘껏 선보인다.
자연스럽게 문인의 길로 접어드는 듯 했으나 어려운 고국의 현실을 외면하지 말라는 주위의 권유로 연세대학교 의대에 진학했다. 1959년 본과 일학년 때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등단하면서 ‘의사시인’의 길을 걷게 된다. 1966년 미국으로 건너간 후, 오하이오 주립대학 병원에서 수련의 시절을 거쳐 미국 진단방사선과 전문의가 되었고, 오하이오 의과대학 방사선과 및 소아과 교수 시절에는 그해 최고 교수에게 수여하는 ‘황금사과상’을 수상했다.
이후 톨레도 아동병원 방사선과 과장, 부원장까지 역임했고 2002년 의사생활을 은퇴할 때까지 ‘실력이 뛰어나고 인간미 넘치는 의사’로서 명성을 쌓았다. 고국을 떠나 이국에서 보내야 했던 그리움과 고독의 시간을 자신만의 시어로 조탁하여 『조용한 개선』을 시작으로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그 나라 하늘빛』, 『이슬의 눈』, 『우리는 서로를 부르는 것일까』 등 수많은 시집을 펴냈다. 2009년에는 시 「파타고니아의 양」으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2002년부터 6년 동안 연세대학교의 초빙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머지않아 ‘고국의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맞게 되기를 소망한다.
이 밖에도 시집 『두 번째 겨울』, 『변경의 꽃』,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하늘의 맨살』, 『마흔두 개의 초록』 등을 펴냈으며, 산문집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 『아주 사적인, 긴 만남』, 『당신을 부르며 살았다』 등을 선보였다. 1997년 ‘이산문학상’과 ‘편운문학상’을, 2003년 ‘제16회 동서문학상’을 수상했다. 2015년에는 『마흔두 개의 초록』이 ‘제23회 대산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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