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사람의 힘으로 끊어낼 수 없다는 말/김지녀 본문

[명시산책]/이서윤 시낭송모음

사람의 힘으로 끊어낼 수 없다는 말/김지녀

시낭송행복플러스 2018. 1. 23. 09:20



사람의 힘으로 끊어낼 수 없다는 말

 

김지녀

 

 

 

바게트 빵처럼 우리가 잘 잘라지지 않아서

당신이 빵칼을 집어던졌던 날

조그만 일에도

당신은 범선의 충각처럼 돌출된다

 

동그란 케이크에 꽂힌 수많은 초들이 다 녹을 때까지

내 속살이 오래된 빵만큼 딱딱해졌을 때까지

나는 어둠을 밝힐 수 없었다

휴지처럼 구겨져서 던져져 있었다

 

빵칼로 나는 청포묵을 잘랐다

두부를 잘랐다

고기는 잘 잘라지지 않아서 칼자국이 지저분했다

우리의 이야기가 고깃덩어리처럼

핏물을 흘리며 말라가던 밤

 

악연은 사람의 힘으로 끊어낼 수 없다는 말을 듣고 돌아오던 날

당신가 내가 헝클어져서

이젠 풀어낼 수 없는 이야기가 되었다는 것

표류가 시작되었다는 것

 

질긴 건 빵이 아니라

당신의 너울

나의 곁눈질

핏물조차 나오지 않을 만큼 메마른 날씨

 

아이가 태어난 날

아직 말을 잘 못하는 아이 앞에서 당신과 내가

폭죽처럼 할 말 못할 말 다 터트렸던 날

촛불 앞에서 당신과 내가 어른거리다 사라졌다

촛불 끄는 일을 재밌어하는 아이를 사이에 두고

당신과 나는

서로 다른 노래를 불렀다

 

 

                     ㅡ 시 전문 계간지 발견2017년 겨울호


김지녀 / 1978년 경기도 양평 출생. 2007세계의 문힉으로 등단. 시집시소의 감정』『양들의 사회학.

'[명시산책] > 이서윤 시낭송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 수수밭에 서면/이준관   (0) 2018.02.03
입춘 부근/장석남  (0) 2018.02.03
별 헤는 밤/이서윤  (0) 2018.01.15
별 헤는 밤/윤동주  (0) 2018.01.10
[스크랩] 담쟁이/도종환  (0) 2018.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