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식물들의 외로움/임동확 본문

아름다운 시편들/시가 있는 하루

식물들의 외로움/임동확

시낭송행복플러스 2018. 4. 15. 12:39



임동확의 식물들의 외로움감상 / 장석주

 

 

식물들의 외로움

 

   임동확 



한사코 어미의 품에서 떼쓰는 아이들처럼 찰진 논바닥에 도열한 벼들. 낱낱이면서 하나인, 또 하나이면서 낱낱인 식물들의 일생을 좌우하는 건 결코 내부의 의지나 선택이 아니다

홀연 태풍처럼 밀려왔다가 그 자취를 감추고 마는 낯선 동력. 누구에게나 단호하고 거침없는 죽음 같은 바깥의 힘

필시 하나의 정점이자 나락인, 끝없는 나락이자 정점인 푸른 줄기마다 어김없이 같으면서도 같지 않을 외로움의 화인(火印)이 찍혀 있는

 

여럿이면서 홀로인 벼 포기들이 끝내 제 운명의 목을 쳐 내는 낫날 같은 손길에 기대서야 겨우 고단한 직립의 천형을 벗어나고 있다.

 

....................................................................................................................................................................................

 
    논바닥에 도열한 벼들을 무심코 논바닥에 도열한 별들이라고 잘못 읽었다. 논바닥이 밤하늘이라면 저 푸른 벼들이 별이 아닐 까닭은 없을 테다. 6월의 무논에 늠름하게 서 있는 저 벼들은 혼자이면서 여럿이다. 벼들의 푸른 줄기는 정점이자 나락인데, 시인은 벼들의 푸른 줄기 안쪽에 찍힌 외로움의 화인(火印)”을 투시해 낸다. 이 식물의 외로움은 제 운명이 타인의 손에 달려 있다는 점에 있다. 운명은 제 선택이나 의지의 일이 아니라 죽음 같은 바깥의 힘에 달려 있다. 벼들은 제 고단한 직립의 천형을 남의 손에 쥐어진 낫날에 기대서만 비로소 벗어날 수 있다.

   장석주 (시인

'아름다운 시편들 > 시가 있는 하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여기 피어 있고/이순현  (0) 2018.05.23
봄날은 간다/손로원  (0) 2018.05.08
독작(獨酌)/임강빈   (0) 2018.04.15
울음의 순서/유진목  (0) 2018.04.08
창문의 감정/성향숙  (0) 2018.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