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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편들/시가 있는 하루

나는 여기 피어 있고/이순현

시낭송행복플러스 2018. 5. 23. 07:59



이순현의 나는 여기 피어 있고」 평설 / 이승하

 

 

나는 여기 피어 있고

 

   이순현

 

 

                                                                    몸 안에는 물고기가 살고 있다 짚어보는 어디든

                                                                    지느러미의 퍼덕거림이 만져진다 물고기는 꽃을 통해

                                                                    다른 세게로 이동해간다 인간의 꽃은 구순과 음순에서

                                                                    피어난다 말과 몸은 한배를 타고난 형제다

 

 

가랑이 사이에 기저귀를 대고

수년째 누워 있는 어머니,

음부는 움푹 패여 컴컴하다

푹 패인 그 주변에는

허옇게 센 음모가

드문드문 지키고 있다

 

한 필생의 바닥에는

태반이 떨어져 나간 분화구들이

무수하게 패여 있을 거야

 

손길이 다 닿지 않는 잔등처럼

다 닿을 수 없었을 기슭,

 

아직 피지 않은 꽃들 있을까

산벚꽃 몽우리처럼 다닥다닥 매달려 있을까

 

이년아 밥 안 주냐!

 

엄마 빨리 와봐

할머니 또 똥 쌌어

 

아줌마는 어디서 왔어요?

 

꿈지럭꿈지럭 이불을 끌어당기는

손아귀의 힘줄 끄트머리마다

손톱들이 숟가락처럼 앙칼지게 박혀 있다


 

               ⸺시집 내 몸이 유적이다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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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에는 세 세대가 나온다. 치매에 걸린 노인과 그의 딸과 손주가. 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작은 활자로 된 앞부분의 인간의 꽃은 구순과 음순에서 피어난다 말과 몸은 한배를 타고난 형제다란 이런 뜻일 게다. 신체의 여러 부위 중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입(구순)에서 나오는 말이며, 인간이 인간을 만드는 것은 성기(음순)라는.

    시적 화자는 2세대이다. 한때 건강한 남성의 성기를 받아들여 자신을 회임했을 화자 어머니의 성기는 지금 가랑이 사이에 기저귀를 대고있고, “음부는 움푹 패여 컴컴한데, 그 주변에는 허옇게 센 음모가 드문드문 지키고 있다“. 아이가 엄마 빨리 와봐/ 할머니 또 똥 쌌어하는 소리에 달려가 봤더니 어머니는 아줌마 어디서 왔어요?“ 하고 자기를 못 알아본다.

    어머니는 구순기로 돌아간 것일까, 항문기로 돌아간 것일까. “이년아 밥 안 주냐!”고 외쳐대는 부분도 그러하지만 어머니의 본능적인 생존의지가 드러나 있는 마지막 연은 더욱 처절하다. 인간은 입과 배설기가 멀쩡한 한 먹고살려고 발버둥치는 동물인 것이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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