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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전남매일 신춘 시 당선작] 개미들의 천국 / 현이령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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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전남매일 신춘 시 당선작] 개미들의 천국 / 현이령

시낭송행복플러스 2021. 1. 12. 16:03

 

[2021 전남매일 신춘 시 당선작] 개미들의 천국

 

현이령

 

아버지가 아침 일찍 공원 숲으로 간다. 노란 조끼를 입고서, 숲이 아닌 것들은 모두 줍는다. 나무와 나무 사이 아버지와 아버지 사이 쓰레기를 줍다가 잘못 건드린 개미집에서 후드득 쏟아져 나오는 아버지.

아버지는 아버지를 물고 개미는 개미를 물고 이끼처럼 들러붙어 저녁을 먹는 우리 집. 아버지의 집에는 아버지도 모르는 집들이 많아. 나는 개미처럼 더듬이가 자라고 발로 툭 치면 무너져 내리는 불안들.

바닥을 잘 더듬는 내력이 우리의 유전자에 있지만 나는 한낮에도 까만 개미가 무섭다. 땅바닥을 쳐다보다 땅이 되는 게 꿈인 아버지가 떵떵거리지 못하는 건 기우뚱한 어깨 때문.

개미는 개미에게 의지하고 의지는 의지에 기대고 아버지의 몸을 기어 다니는 수많은 개미 떼. 아버지는 밤마다 방을 쓸어내지만 개미는 사라지지 않는다. 지었다 허물었다 오롯이 사라지는 비밀의 집.

새집을 달아 주러 온 나는 새 운동화로 개미를 밟는다. 거대한 발자국 아래 무너진 한 뼘 그늘. 머루 열매 같은 눈알을 꼭꼭 숨긴 아버지.

나는 울먹이며 신발을 턴다. 자꾸만 들러붙는 개미들의 그림자. 숲이 사라져도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

 

심사평 / 나희덕 시인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곳이 멀지 않다』, 『어두워진다는 것』,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파일명 서정시』 등.


고통 받는 존재에 대한 공감 시인의 중요 덕목

 

700여 편의 응모작들을 읽었다. 코로나 시대의 어둡고 우울한 사회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했지만, 고향이나 농촌을 배경으로 한 생활 시편들이나 자연 친화적인 서정시들이 여전히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다보니 너무 직설적이거나 감상적인 경우가 많았고, 타성에서 벗어난 새로운 언어적 모색이 아쉬웠다. 그런 중에 발견한 <커튼콜>, <긴장의 재구성>, <개미들의 천국> 등은 참신한 발상과 시적 완성도를 갖추고 있는 수작이었다.

<커튼콜> 외 4편은 경쾌하고 발랄한 언어 감각을 지니고 있고 독특한 소재와 형식을 통해 다채로운 시세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시적 인식이 충분한 깊이를 확보하지 못하고 재치에 머무르거나 낭만적 우화에 그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반면, <긴장의 재구성> 외 4편은 사유의 폭이 넓으면서도 집중도가 있고 시적 대상에 대한 비판적 태도가 돋보였다. 현실의 문제를 형이상학적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사유는 독창적이지만, 전달력이 떨어지거나 거칠고 어색한 문장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개미들의 천국> 외 4편은 전체적으로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간결하고 섬세한 언어로 삶의 비애와 불안을 그려내고 있다. 그의 시는 어떤 간절함을 지니고 있으나 감정을 함부로 발산하거나 낭비하지 않는다. 당선작인 <개미들의 천국>에서 공원 청소부인 ‘아버지’를 바라보는 ‘나’의 슬픔은 절제된 표현에도 불구하고 먹먹하게 읽힌다. 힘이 없고 고통 받는 존재들에 대한 공감과 연민은 시인의 중요한 덕목이라는 점에서 당선자의 시선과 마음에 신뢰가 갔다. 그 마음의 힘으로 앞으로도 아름다운 시의 길을 열어가시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