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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부짖는 서정/송찬호 본문
송찬호의 「울부짖는 서정」 평설 / 박남희
울부짖는 서정
송찬호
한밤중 그들이 들이닥쳐
울부짖는 서정을 끌고
밤안개 술렁이는
벌판으로 갔다
그들은 다짜고짜 그에게
시의 구덩이를 파라고 했다
멀리서 사나운 개들이
퉁구스어로 짖어대는 국경의 밤이었다
전에도 그는 국경을 넘다
밀입국자로 잡힌 적 있었다
처형을 기다리며
흰 바람벽에 세워져 있는 걸 보고
이게 서정의 끝이라 생각했는데
용케도 그는 아직 살아 있었다
이번에는 아예 파묻어버리려는 것 같았다
나무 속에서도
벽 너머에서도
감자자루 속에서도 죽지 않고
이곳으로 넘어와
끊임없이 초록으로 중얼거리니까
⸺시집 『분홍 나막신』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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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고리 시의 묘미는 명확한 대상의 설정을 통한 비판이나 풍자에 있다. 하지만 알레고리 시가 흔히 빠지기 쉬운 함정은 지나친 교훈성과 의미구조의 단순성에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위험을 극복하는 길은 지나친 교훈을 경계하고 단순하지 않은 시적 구조를 설정하는 일이다. 그 흔하지 않은 예를 우리는 송찬호의 시에서 찾아보게 된다. 단적으로 말하면 송찬호의 「울부짖는 서정」은 사라져 가는 서정시에 관한 메타 시이다. 이 시에서 시적 주체인 ‘서정’은 국경을 넘다가 국경수비대에 붙잡힌 밀입국자로 설정되어 있다. 이러한 설정은 서정시가 점점 힘을 잃고 있는 현 시단의 분위기와 맞물려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일반적으로 밀입국자들이 그가 입국하려는 나라보다 낙후된 나라 사람인 경우가 많듯이, 이 시에서 ‘서정’은 무언가에 쫓기는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다. 알레고리 시가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1:1 대응 관계에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서정’을 쫓는 국경수비대는 ‘탈서정’ 쯤으로 해석이 가능해진다.
우리나라에 아방가르드가 본격적으로 시에 도입된 것은 1930년대 이상(李箱)의 시에서였다면,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1980년대에는 또 다시 황지우, 이성복, 박남철을 중심으로 제2의 아방가르드라고 할 수 있는 해체시의 시대가 도래한다. 하지만 소련의 붕괴로 냉전 체제가 종식되면서 1990년대에 오면 또 다시 서정으로의 복귀가 추진된다. 이 당시의 이러한 경향을 우리는 보통 신서정으로 통칭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낯선 서정은 전통적 서정과는 다른, 모던하거나 실험성을 가미한 서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흐름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송찬호의 위 시만 읽어보면 그가 지독한 서정주의 신봉자처럼 보이지만 송찬호의 시는 서정 쪽으로 치우쳐 있지 않고 모던한 시와 서정시의 중간쯤에 탄력 있는 시를 쓰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서정이 어떤 억압에 울부짖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서정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을까? 그것은 아마 송찬호 시인의 시의 뿌리가 아방가르드보다는 서정 쪽으로 가깝게 뻗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아방가르드(전위)의 핵심은 죽어버린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데 있고, 아리에가르드(후위)의 핵심은 그것을 아직 좋아하는 데 있다”는 페터 뷔르거(Peter Burger)의 말이 떠오른다. 이 말에 비추어보면 송찬호 시인은 아직도 서정에 대한 좋은 추억과 향수를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흐름에서 위의 시를 읽어보면 “멀리서 사나운 개들이/ 퉁구스어로 짖어대는 국경의 밤”을 넘으려는 ‘서정’의 몸부림은 서정의 시대에서 신서정의 시대로 넘어오면서도 끝내 살아남은 서정의 끈질긴 생명력을 한 편의 시에 오롯이 담아내고 있는 것처럼 읽힌다.
⸺계간 《시인시대》 2021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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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희 / 1956년 경기 고양 출생. 1996년 경인일보, 199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 당선. 시집 『폐차장 근처』 『이불 속의 쥐』 『고장 난 아침』 『아득한 사랑의 거리였을까』. 평론집 『존재와 거울의 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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