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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낡은집/이용악 본문

[명시산책]/이서윤 시낭송모음

낡은집/이용악

시낭송행복플러스 2022. 1. 27. 00:07

 

한국현대대표시〕 낡은 집/시 이용악, 시낭송/ 이서윤

 

 

날로 밤으로

왕거미 줄치기에 분주한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이 집에 살았다는 백성들은

대대손손에 물려 줄

은동곳도 산호관자도 갖지 못했니라.

 

재를 넘어 무곡을 다니던 당나귀

항구로 가는 콩실이에 늙은 둥글소

모두 없어진 지 오랜

외양간엔 아직 초라한 내음새 그윽하다만

털보네 간 곳은 아무도 모른다.

 

찻길이 놓이기 전

노루 멧돼지 족제비 이런 것들이

앞뒤 산을 마음놓고 뛰어다니던 시절

털보의 셋째 아들

나의 싸리말 동무는

이 집 안방 짓두광주리 옆에서

첫울음을 울었다고 한다.

 

털보네는 또 아들을 봤다우

송아지래두 불었으면 팔아나 먹지.”

마을 아낙네들은 무심코

차가운 이야기를 가을 냇물에 실어 보냈다는

그날 밤

저릎등이 시름시름 타들어 가고

소주에 취한 털보의 눈도 일층 붉더란다.

 

갓주지 이야기와

무서운 전설 가운데서 가난 속에서

나의 동무는 늘 마음 졸이며 자랐다.

당나귀 몰고 간 애비 돌아오지 않는 밤

 

노랑 고양이 울어울어

종시 잠 이루지 못하는 밤이면,

어미 분주히 일하는 방앗간 한구석에서

나의 동무는

도토리의 꿈을 키웠다.

 

그가 아홉 살 되던 해

사냥개 꿩을 쫓아다니던 겨울

이 집에 살던 일곱 식솔이

어데론지 사라지고 이튿날 아침

북쪽을 향한 발자국만 눈 위에 떨고 있었다.

 

더러는 오랑캐령 쪽으로 갔으리라고

더러는 아라사로 갔으리라고

이웃 늙은이들은

모두 무서운 곳을 짚었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제철마다 먹음직한 열매

탐스럽게 열던 살구

살구나무도 글거리만 남았길래

꽃피는 철이 와도 가도 뒤울안에

꿀벌 하나 날아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