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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아아, 훈민정음/ 오세영

시낭송행복플러스 2022. 7. 13. 11:39

아아, 훈민정음

 

  오세영 

 

 

언어는 원래 신령스러워

언어가 아니고선 신을 부를 수 없고

언어가 아니고선 영원永遠을 알 수 없고,

언어가 아니고선

생명을 감동시킬 수 없나니

태초에 이 세상은

말씀으로 지으심을 입었다 하나니라.

그러나 이 땅, 그 수많은 종족의 수많은

언어들 가운데 과연

그 어떤 것이 신의 부름을 입었을 손가.

마땅히 그는 한국어일지니

동방에서

세상 최초로 뜨는 해와 지는 해의

그 음양陰陽의 도가 한 가지로 어울렸기 때문이니라.

, 한국어,

그대가 하늘을 부르면 하늘이 되고,

그대가 땅을 부르면 땅이,

인간을 부르면 인간이 되었도다.

그래서 어여쁜 그 후손들은

하늘과

땅과

인간의 이치를 터득해

‘·’, ‘’,‘세 글자로 모음 11자를 만들었고

천지조화天地造化, 오행운수五行運數, 그 성과 정을 깨우쳐

,, , ,

5종의 자음, 17자를 만들었나니

이 세상 어느 글자가 있어

이 처럼 신과 내통할 수 있으리.

어질고 밝으신 대왕 세종世宗께서는

당신이 지으신 정음正音 28자로

개 짖는 소리, 천둥소리, 심지어는 귀신이 우는

울음소리까지도

적을 수 있다고 하셨으니

참으로 틀린 말이 아니었구나.

좌우상하左右上下를 마음대로 배열하여

천지간 막힘이 없고

자모를 결합시켜 매 음절 하나하나로

우주를 만드는

아아, 우리의 훈민정음.

속인들은 이를 가리켜

이 세계 어느 글자보다도 더 과학적이라고 하나

어찌 그것이 과학에만 머무를 손가.

그대, 하늘을 부르면 하늘이 되고,

땅을 부르면 땅이,

인간을 부르면 인간이 되는

아아, 신령스러운 우리의

한국어,

우리의 훈민정음.

 

     ㅡ『갈필의 서』( 서정시학 2022)

 

 

오세영시인/ 1942년 전남 영광 출생, 전남 장성, 전북 전주에서 성장.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졸업, 동대학 문학박사.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 미국 버클리대 및 체코 챨스대 방문교수. 아이오아대학교 국제 창작프로그램 참여. 1965-68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 시집으로 '시간의 뗏목', '봄은 전쟁처럼', '문열어라 하늘아', '무명연시', '사랑의 저쪽', '바람의 그림자' 등. 학술서로 '20세기 한국시 연구', '상상력과 논리', '우상의 눈물', '한국현대시 분석적 읽기', '문학과 그 이해' 등.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만해상 문학부문 대상, 시협상, 김삿갓문학상, 공초문학상, 녹원문학상, 편운문학상, 불교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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