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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무단횡단/ 이재훈 본문
무단횡단
이재훈
감격이 없는 시간이었다.
누추하고 불편한 오후만 지나갔다.
모든 것을 버릴만한 일이 없었다.
대단한 경험도 은밀한 시간도 없었다.
길 한 가운데 자동차가 가득하다.
자동차들 사이로 소년이 서 있다.
소년을 인도할 사람은 없다.
빈들에 서서 빈 목소리를 듣는다.
빈 마음으로 운다.
모두 멸시할지라도
모두 천대하더라도
소년은 질문에 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지만
불타오르는 음란은 늘 존재한다.
경건한 시간도 없이 시간만 흐른다.
한겨울 앙상한 가지도
눈이 내리면 아름답다고 환호한다.
기다리면 눈은 내린다.
하늘을 올려다볼 일이 없는 도시에서
무엇을 지키려고 불을 기다리는가.
소년 앞에는 횡단보도가 있다.
사람들은 모두 안전하게 횡단한다.
지킬 것 없는 시간들을 마주한다.
소년의 오후는 무단으로 기록되고
무단으로 소년의 길이 비틀거린다.
여기저기 경적 소리가 울린다.
—《문학청춘》2017년 여름호
재훈 / 1972년 강원 영월 출생. 1998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명왕성 되』『벌레 신화』, 기타 저서 『현대시와 허무의식』『딜레마의 시학』『부재의 수사학』, 대담집『나는 시인이다』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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