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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굴피집에 가고 싶네. 굴피 껍질 덮고 낮은 집에 살고 싶네. 저녁 굴뚝 되고 싶네 저문 연기 되어 퍼지고 싶네 허릴 굽혀 방문 열고 담벼락 한켠 아주까리 등잔불 가물거리는 아랫목에 눕고 싶네 육전소설 읽고 싶네 뒷산 두견이 삼경을 흠씬 적시다 가고난 후 문풍지 혼자 우는 굴피집에 눕고 싶네 나 굴피집에 가고 싶네. ⸻⸻⸺⸻⸺ * 육전소설 : 1913년부터 신문관에서 간행한 값싼 문고본 소설. ⸻계간 《시와 시학》 2020년 여름호 ------------- 이건청 / 1942년 경기도 이천 출생. 196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입선, 1970년 《현대문학》추천 완료(박목월 시인)로 등단. 시집 『이건청 시집』 『목마른 자는 잠들고』 『망초꽃 하나』 『청동시대를 위하여』 『하이에나』 『코뿔소를 찾아서』 『..
테린쿠유*는 입구가 좁고 낮은 문장, 무릎걸음으로 걸어야 읽을 수 있네 땅속으로 이어진 수천 개의 단락을 읽으려면 내 몸이 글자가 되어야 하네 돌로 통로를 막아버리면 단 한 명의 천사도 들어 올 수 없는 캄캄한 구절에 깜짝 놀란 나는 어두운 숲이 되기도 하네 ‘이 거친 숲이 얼마나 가혹하며 완강했는지 얼마나 말하기 힘든 일인가’** 어둠에 가로막힌 나는 돌벽이 파고 들어간 문장을 개미들의 교회, 개미들의 학교, 개미들의 공동 부엌, 개미들의 회의 장소, 개미들의 마구간과 포도주 제조 구역까지 있는 구문으로 오독하네 잘못 읽은 문장은 내게 지옥 같아서 이 지옥 속에서 어떻게 살까, 살 수 있을까, 더듬더듬 돌벽을 더듬는 생각이 깊이를 파네 내가 아는 건 보이지 않는 깊이에 우물이 있다는 거, 그 ..
절취선이 없는 나무를 알고 있다 새들이 단단한 부리를 나뭇가지에 닦고 있는 동안 어둠이 숲의 안쪽에서부터 층층 번져온다 눈물 껍질만 남아 있는 겨울 숲속에 부음 봉투처럼 서 있는 고욤나무 결빙도 없는 인가의 울타리 안에는 야생을 접붙여진 대봉감나무들이 무릎께의 절취선을 흉터처럼 드러낸 채 배부른 안식에 화롯불을 쬔다 한 소절 적막한 기우 위로 눈이 쌓인다 별들이 동전처럼 짤랑짤랑 빛나는 하늘 강 위로 새들의 울음소리 얼어붙는다 폭설이 휩쓸고 간 산등성이 위로 싱싱하게 쌓이는 보랏빛 달빛 소한을 밀어내고 대한이 숲을 점령할 때쯤 고독과 고독 사이 얼었다 녹았다 거무튀튀한 몸 안으로 단물이 차오르는 고욤 번식만 하다 죽어가는 모견처럼 검은 숲에 처박혀 가슴팍에 파고드는 야윈 바람의 새끼들에게 수백 개의 젖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