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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편들/시가 있는 하루

한점 해봐, 언니/김언희

시낭송행복플러스 2017. 11. 27. 08:57



김언희의「한점 해봐, 언니」감상 / 안도현



한점 해봐, 언니


  김언희 (1953~ )



   한점 해봐, 언니, 고등어회는 여기가 아니고는 못 먹어, 산 놈도 썩거든, 퍼덩퍼덩 살아 있어도 썩는 게 고등어야, 언니, 살이 깊어 그래, 사람도 그렇더라, 언니,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어도 썩는 게 사람이더라, 나도 내 살 썩는 냄새에 미쳐, 언니, 이불 속 내 가랑이 냄새에 미쳐, 마스크 속 내 입 냄새에 아주 미쳐, 언니, 그 냄샐 잊으려고 남의 살에 살을 섞어도 봤어, 이 살 저 살 냄새만 맡아도 살 것 같던 살이 냄새만 맡아도 돌 것 같은 살이 되는 건 금세 금방이더라, 온 김에 맛이나 한번 봐, 봐, 지금 딱 한철이야, 언니, 지금 아님 평생 먹기 힘들어, 왜 그러고 섰어, 언니, 여태 설탕만 먹고 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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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은 얌전한 척, 조신한 척, 고매한 척하는 것을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다. 김언희 시인은 한국 시의 안정적 형상 체계를 해체하고 뒤흔드는 일을 시업의 중심으로 삼아온 사람이다. 기괴하고 섬뜩한 상상력으로 만든 그의 언어들은 비겁하고 쩨쩨한 현실을 들쑤시고 비판하는 데 적격이었다. 싱싱한 고등어회가 썩는 살을 불러오고 나아가 내 살의 냄새로 번지는 과정에 한 점의 망설임도 없다. 직격탄이 아니면 탄환이 아니라는 듯 당돌하고 그 속도는 빠르다. 당신은 난데없는 쾌감에 주눅 들지 마시기를.   
     
 안도현 (시인,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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