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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熱)의 잔존/윤은성 본문

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열(熱)의 잔존/윤은성

시낭송행복플러스 2018. 2. 18. 10:49



(熱)의 잔존


  윤은성






차를 마시는 동안 계절이 또 바뀌었어
 
등과 손이 아프지 끓어오른 이후의 찻물 속이라 할지라도 지시가 아니라 존재라고 할지라도 굽은 뼈로 가리켜 우리가 있는 발등과 지금의 유일한 여기를
 
여름이 지금껏 끝나지 않았다는 듯이
창가의 고무나무는 물만으로 색이 짙고
 
유리문 밖으로 버스가 지나가고 승합차가 지나가고
근조 화환을 옮기는 남자가 지나가
 
이런 걸 세고 있는 거야
 
버스와 승합차의 차이와
승합차와 트럭의 차이와
트럭과 우리의 차이 같은
 
이런 차이들은 혐의들의 이름 같지
무엇을 위해 잠을 잤니 이런 질문이 온다면
방향이 아니라 혐의잖아
 
그러면 더 세는 거야
용도와 용기의 차이와
치열(熾㤠)과 치열(齒列)의 유사
 
그리고 남은 낙엽 같은 맴도는 손가락들
만족이 없다는 게 성품의 문제일까 계절의 형식일까
의미가 되지 못하는 건 발등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인지
발등이 흐릿하면 뛸 수가 없는 건지
 
쌓인 낙엽 위로 뛰어가는 아이들
뛰어가는 아이들 뒤로 튀어 흩날리는 낙엽들
 
한낮이 지나고 사무실은 잠시 인기척이 없어 시간이 흐르도록 내버려 둔다는 의미로 나는 방치라는 이름을 잠시 빌려 쓰기로 해

찻잔을 들었다 내려놓고 찻물이 흔들리고
찻잔 안에는
서로 친근한 이름의 기계들로 차 있어 



                        

                          ㅡ월간 시인동네20181월호


 

윤은성 /  1987년 전남 해남 출생. 중앙대학교 국문과 대학원 재학 중. 2017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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