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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기억의 알리바이/강연호 본문
기억의 알리바이
강연호
누군가는 말을 해야 하는데 침묵이 길어진다면
공기는 코르셋 같고 회유는 노브라 같다면
마침내 진술 대신 혼자 중얼거리다가 흐느낀다면
포기 대신 악수를 하고 끈적이는 손바닥을 닦아낸다면
누군가는 있어줘야 하는데 문을 쾅 닫고 나간다면
천장은 누워 있고 벽은 서 있다
비가 오면 어딘가 두고 온 우산도 젖으리라
문신은 희미해질수록 살갗을 움켜쥔다
눈 한번 깜빡일 때마다
그녀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마술이 감쪽같다
필사적으로 버티던 귤껍질이 있었다
이제 다 말라비틀어졌다
곰인형 속에서 나온 얼굴은 진짜 곰이었다
새벽 두 시에서 세 시 사이에 대개 무너지는 법이죠
완벽한 현장에 당신의 부재는 증명되지 않아요
이윽고 불이 꺼지고
책상은 책상인데 누가 머리를 짓찧는다면
의자는 의자인데 다리가 허공을 향해 바둥거린다면
거울에 대고 느닷없이 주먹을 날리거나
혼자인 입술이 혼자인 입술과 부드럽게 키스를 나눈다면
그거 한쪽만 거울인 유리창인데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면
ㅡ《현대시》 2018년 2월호
강연호 / 1962년 대전 출생. 1991년 《문예중앙》을 통해 시 등단. 시집『비단길』『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세상의 모든 뿌리는 젖어 있다』『기억의 못갖춘마디』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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