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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편들/시가 있는 하루

공터에서 먼 창/신용목

시낭송행복플러스 2018. 3. 9. 10:06



신용목의 「공터에서 먼 창」 감상 / 문태준



공터에서 먼 창

 

   신용목(1974~ )



내가 가장 훔치고 싶은 재주는 어둠을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저녁의 오래된 기술.


불현듯 네 방 창에 불이 들어와, 어둠의 벽돌 한장이 차갑게 깨져도
허물어지지 않는 밤의 건축술.


검은 물속에 숨어 오래 숨을 참는 사람처럼,


내가 가진 재주는 어둠이 깨진 자리에 정확한 크기로 박히는,

슬픔의 오래된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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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를 읽으니 밤은 하나의 건축된 구조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둠이라는, 꼭 같은 크기의 벽돌 한장 한장으로 차곡차곡 쌓아 올린 건물로 이해된다. 밤이라는 구조물에서 한장의 벽돌을 누군가 빼가지만, 그 자리에는 슬픔이라는 벽돌이 정확한 크기로 그 결여를 메운다.
   모든 대상은 우리가 감각하는 내용보다 훨씬 입체적일지도 모른다. 가령, 신용목 시인이 시 ‘그림자 섬’에서 “빗방울에도 얼굴이 있다는 것이 신비로웠고, 목소리에도 해변이 있다는 것이 아름다웠다”라고 썼을 때, 이 시구를 읽는 순간 ‘목소리’라는 것이 내 상상 속에서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해변처럼 입체적으로 펼쳐졌다. 그리고 내게 말하는 당신의 목소리에는 하얀 모래알들이 쌓인 모래사장이 들어 있고, 파도소리가 들어 있고, 외줄의 무덤덤한 수평선이 들어 있고, 출렁이는 푸른빛이 들어 있다.
   우리도 지금 ‘봄’이라는 건물 속에 있다. 3월, 새싹, 약하게 부는 바람, 둥근 빗방울, 얇아진 옷, 흐르는 물, 노란 햇살, 새 학기 등의 벽돌이 차곡차곡 쌓여 이룬 ‘봄’이라는 건물 속에.


  문태준 (시인, 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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