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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의 감정/성향숙 본문
성향숙의 「창문의 감정」 감상 / 맹문재
창문의 감정
성향숙
친구가 사라졌을 때
표정이 바뀌는 사각의 창문
저 꽃들,
저 구름들, 저 붉은 태양
평온을 가장한 거짓에 불과할 뿐
창문의 감정은 낙하한다
위치를 바꾸지 않고도
창문이 제시하는 단서는 원근이다
터무니없는 햇빛의 창문
유리가 쓰는 창문의 성향은 관음이어서
똑같은 이야기의 이별을 재생한다
끝내 두 줄 철로만 보여주는 창문엔
돌아선 친구의 뒤통수가 있고
유서도 남기지 않고 자살한 수요일의 저녁이 있다
비명을 지르는 고양이와 몰래 창을 빠져나간 나무
아득한 심연처럼 번지는 바람의 흔적과
무의미하게 산란하는 달빛이 있다
코 푼 손수건처럼 차곡차곡 접은 창문을 주머니에 넣는다
친구의 하얀 발등은 추억처럼 희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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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화자는 “친구가 사라졌을 때” 마음의 충격으로 인해 “표정이 바뀌는 사각의 창문”을 발견한다. 창밖으로 보이는 “저 꽃들,/ 저 구름들, 저 붉은 태양/ 평온을 가장한 거짓에 불과”하다고도 느낀다. ‘창문의 감정’이 ‘낙하’하고, “위치를 바꾸지 않고도/ 창문이 제시하는 단서”가 ‘원근’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그렇지만 ‘창문’은 ‘친구’의 슬픔에 함몰되지 않는다.
“유리가 쓰는 창문의 성향은 관음이어서/ 똑같은 이야기의 이별을 재생”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끝내 두 줄 철로만 보여주는 창문엔/ 돌아선 친구의 뒤통수가 있고/ 유서도 남기지 않고 자살한 수요일의 저녁이 있”을 뿐만 아니라 “비명을 지르는 고양이와 몰래 창을 빠져나간 나무/ 아득한 심연처럼 번지는 바람의 흔적과/ 무의미하게 산란하는 달빛이 있다.” 그 결과 “친구의 하얀 발등은 추억처럼 희미해”지게 되는 것이다.
유리로 만든 ‘창문’은 투명해서 이 세계를 다 보여준다. 더 이상 숨기지도 가리지도 않는다. 밀실의 세계는 존재하지 않고 열린 세계를 지향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창문’은 슬픔에 갇히거나 함몰되지 않는다.
맹문재 (시인, 안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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