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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의 감정/성향숙 본문

아름다운 시편들/시가 있는 하루

창문의 감정/성향숙

시낭송행복플러스 2018. 3. 29. 00:17



성향숙의 창문의 감정감상 / 맹문재

 

 

창문의 감정

 

   성향숙

 

 

친구가 사라졌을 때

표정이 바뀌는 사각의 창문

 

저 꽃들,

저 구름들, 저 붉은 태양

평온을 가장한 거짓에 불과할 뿐

 

창문의 감정은 낙하한다

 

위치를 바꾸지 않고도

창문이 제시하는 단서는 원근이다

 

터무니없는 햇빛의 창문

유리가 쓰는 창문의 성향은 관음이어서

똑같은 이야기의 이별을 재생한다

 

끝내 두 줄 철로만 보여주는 창문엔

돌아선 친구의 뒤통수가 있고

유서도 남기지 않고 자살한 수요일의 저녁이 있다

비명을 지르는 고양이와 몰래 창을 빠져나간 나무

아득한 심연처럼 번지는 바람의 흔적과

무의미하게 산란하는 달빛이 있다

 

코 푼 손수건처럼 차곡차곡 접은 창문을 주머니에 넣는다

친구의 하얀 발등은 추억처럼 희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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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의 화자는 친구가 사라졌을 때마음의 충격으로 인해 표정이 바뀌는 사각의 창문을 발견한다. 창밖으로 보이는 저 꽃들,/ 저 구름들, 저 붉은 태양/ 평온을 가장한 거짓에 불과하다고도 느낀다. ‘창문의 감정낙하하고, “위치를 바꾸지 않고도/ 창문이 제시하는 단서원근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그렇지만 창문친구의 슬픔에 함몰되지 않는다.

   “유리가 쓰는 창문의 성향은 관음이어서/ 똑같은 이야기의 이별을 재생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끝내 두 줄 철로만 보여주는 창문엔/ 돌아선 친구의 뒤통수가 있고/ 유서도 남기지 않고 자살한 수요일의 저녁이 있을 뿐만 아니라 비명을 지르는 고양이와 몰래 창을 빠져나간 나무/ 아득한 심연처럼 번지는 바람의 흔적과/ 무의미하게 산란하는 달빛이 있다.” 그 결과 친구의 하얀 발등은 추억처럼 희미해지게 되는 것이다.

   유리로 만든 창문은 투명해서 이 세계를 다 보여준다. 더 이상 숨기지도 가리지도 않는다. 밀실의 세계는 존재하지 않고 열린 세계를 지향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창문은 슬픔에 갇히거나 함몰되지 않는다.

 

   맹문재 (시인, 안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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