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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기적/유종인 본문
유종인의 「숲의 기적」 감상 / 이정원
숲의 기적
유종인
다람쥐나 청설모가
입안 가득한 상수리 열매를 어쩌지 못해
도린곁 어웅한 데다
그걸 파묻어 버리곤 더러 잊는다고 한다
나 같으면 나무 십자가라도 세워 놓았을 그곳을
까맣게 잊어버린 탓에
먼 훗날 푸른 어깨를 겯고 숲이 나온다 한다
기억보다 먼저
망각이 품고 나온 숲,
용서보다 웅숭깊은 망각,
어딘가 잊어 둔 파란 눈의 감정도
여러 대륙에 걸쳐 사는 당신도
어쩌면 망각을 옹립한 탓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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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쥐나 청설모가 부지런히 물어 나른 도토리가 숲을 만들었구나. 여기 저기 파묻은 곳을 잊어버린 탓에 상수리는 새 생명을 새로운 터전에 이식하는 데 성공을 거두었구나. 망각은 노화현상의 결과 내지는 뇌기능의 퇴보 등 부정적 단어로 인식하기 쉬운데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에 삶이 가능하다고 한다. 시인은 용서보다 웅숭깊다고 했다. 망각을 옹립한 탓에 인간의 세계화가 가능했을 것이라는 망각예찬을 되뇌며 색색의 조화로 아름다운 가을의 숲을 거닌다. 시간이 자남에 따라 의식적 복습이 없는 한 기억내용이 자연스레 감소한다는 ‘망각곡선’이란 가설처럼 건망증이야말로 해마에 중요한 정보가 가득하다는, 뛰어난 지능의 반증이라고 하니 깜박깜박하는 내 건망증을 위한 최고의 핑계거리가 되겠다.
이정원 (시인)
* 시의 정독을 위해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단어들 ... 도린곁, 어웅하다, (~를) 겯다, 웅숭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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