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이서윤시낭송
- 한국명시낭송클럽
- 시낭송행복플러스
- 윤동주
- 강서구민회관시낭송
- 시낭송
- 풍경이 있는시
- 축시낭송
- 강서구민회관 시낭송반
- 좋은시
- 이서윤
- 허준박물관
- 한국명시낭송예술인연합회
- 풍경이 있는 시
- 신춘문예
- 한국명시
- 한국명시낭송
- 문학
- 명시
- 시인
- 허준
- 장수길
- 애송시
- 시낭송아카데미
- 이서윤 시인
- 현대시
- 명시낭송
- 동의보감
- 이서윤 시낭송
- 세계명시
- Today
- Total
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꽃/안도현 본문
꽃
안도현
바깥으로 뱉어내지 않으면 고통스러운 것이
몸속에 있기 때문에
꽃은, 핀다
솔직히 꽃나무는
꽃을 피워야 한다는 게 괴로운 것이다
내가 너를 그리워하는 것,
이것은 터뜨리지 않으면 곪아 썩는 못난 상처를
바로 너에게 보내는 일이다
꽃이 허공으로 꽃대를 밀어올리듯이
그렇다 꽃대는
꽃을 피우는 일이 힘들어서
자기 몸을 세차게 흔든다
사랑이여, 나는 왜 이렇게 아프지도 않는 것이냐
몸속의 아픔이 다 말라버리고 나면
내 그리움도 향기나지 않을 것 같아 두렵다
살아남으려고 밤새 발버둥을 치다가
입 안에 가득 고인 피,
뱉을 수도 없고 뱉지 않을 수도 없을 때
꽃은, 핀다
....................................................................................................................................................................
시적 인식은 대상을 다르게 볼 수 있을 때 이루어진다. 안도현 시인의 「꽃」은 ‘다르게 보기’의 모범적 사례다. 아름다움의 상징인 꽃에서, 시인은 고통과 괴로움을 포착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 포착은 아름다움에 대한 안도현 시인의 특유한 정의이기도 하다. 고통스럽기 때문에 표현될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이 그에겐 아름답다. 아름다움은 균제나 화려함에서 오지 않는다. 도리어 우리가 보기를 피하는 무엇으로부터 아름다움은 표현된다. 즉 “터뜨리지 않으면 곪아 썩는 못난 상처”가 아름답다. 그러한 상처야말로 아름다움을,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아마 모든 상처와 고통이 아름다움을 꽃피우지는 않으리라. 오직 사랑으로 인한 상처와 고통이 꽃을 피운다. 아름다움의 연원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세계를 아름답게 만든다. 그러나 사랑의 실패로 인한 고통이 사랑의 힘을 더욱 실감하게 하며, 그래서 사랑의 고통은 더욱 처절한 아름다움을 표현해낸다. 그 표현의 산물이 안도현 시인에겐 꽃인바, 꽃은 삶의 야들야들한 표현물이 아니라 “자기 몸을 세차게 흔”들며 “살아남으려고 밤새 발버둥을 치다가/ 입 안에 가득 고인 피”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하여, 꽃의 향기는 격렬한 피 냄새다. 그런데 그 비릿한 냄새를 향기의 아름다움으로 변환시키는 능력을 가진 것이 또 꽃인 것이다. 시인은 저 향기로우면서도 삶의 격정과 고통을 표현하고 있는 꽃을 보면서, 자신의 사랑이 저 꽃만치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닌지, 그리움이 향기나지 않는 것은 아닌지 반성한다. 그것은 자신의 시에 대한 반성과 관련되리라. 저 꽃은 바로 시의 이상(ideal)이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서정시가 발하는 아름다움은 실연의 고통과 격정으로부터 끌어올려지지 않았던가.
서정시인은 사랑의 말을 떠나버린 너를 향해 하늘로 띄워 보낸다. “꽃이 허공으로 꽃대를 밀어올리듯이” 말이다. 그것은 “바깥으로 뱉어내지 않으면 고통스러운 것이/ 몸속에 있기 때문”에 해야 하는 괴로운 일,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다. 이 고통 속에서, “뱉을 수도 없고 뱉지 않을 수도 없”는 팽팽하고 격렬한 긴장 속에서 시는 쓰여지고, 꽃은 피어난다.
이성혁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