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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출입기사믈럽, 제30회 정기세미나 및'월파 서민호기념학술대회 본문
국회출입기자클럽, 제30회 정기세미나 및 ‘월파 서민호 기념 학술대회’ 개최
<월파 서민호이다>
[선데이타임즈=오양심주간] 국회출입기자클럽에서는 24일,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제30회 정기세미나 및 ‘월파 서민호 기념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홍순철의 섹스폰 연주와 이서윤의 시낭송, 이순옥의 가요가 식전행사로 진행되었으며, 박정이 前(예)육군대장, 송영길 국회의원, 신용수(단국대상경대학장)박사, 유준상 前국회의원, 이동섭 국회의원 등 100여명이 참석하여 자리를 빛냈다.
<송방원 회장(왼쪽 세 번째)이다>
송방원 회장은 “오늘은 ‘월파 서민호 기념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참으로 뜻깊은 날입니다. 월파 서민호는 우리나라의 근 현대사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한사람입니다. 월파는 미국과 일본 등지에서 신학문을 두루 섭렵했습니다. 세계 수많은 지도급 인사들과 교우했습니다. 민주주의와 민족주의를 위해서 앞장섰습니다. 월파 서민호의 학술대회에서 많은 정보를 얻고, 업적을 기리는 유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하고 인사말을 했다.
<이상수 대회장이다>
이상수(前노동부 장관, 변호사)대회장은 “월파 서민호 선생님은, 미국작가인 너새니얼 호손이 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처럼, 곧고 바르고, 지역민의 모범이 된 큰 바위얼굴이자, 한국 정치사의 큰 별이었습니다. 우리는 월파 서민호 선생님을 추모하고, 그 분의 높은 뜻과 깊은 철학을 본받아, 조국 혼과 민족의식을 일깨우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 분의 높은 뜻은 조국과 민족을 위해 내일을 걱정하는 마음입니다. 깊은 철학은, 오늘의 현실을 분석하고 투시하는 힘입니다. 선생님은 항일정신, 반공정신, 반독재투쟁정신이 투철하여 일관된 자세로 행동했습니다. 진지하고 뜻깊은 이 행사를 계기로 월파 서민호 선생님의 나라사랑, 민족사랑 정신을 길이 빛냅시다.”하고 대회를 선언했다.
<Dr.Hans Trinklein 목사이다>
Dr.Hans Trinklein 목사는 “‘월파 서민호 기념 학술대회에 참석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 학술대회로 인하여 그분의 모범적인 삶이 본보기가 되어, 국가와 민족을 위한 아름다운 길이 영원히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하고 축하기도를 했다.
박정이 前(예)육군대장은, 학술대회에 앞서 월파 서민호의 일대기를 소개했다. “월파 서민호 선생은 정치가입니다. 전라남도 고흥 출신으로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대학, 미국 웰스리언대학, 컬럼비아대학 등에서 수학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함흥형무소에 투옥되었습니다. 초대광주시장, 조선전업회사 사장을 거쳐 조선대학교를 설립했습니다. 국회조사단장으로 거창양민학살사건을 조사하던 중 복역했습니다. 1961년 제15차 UN총회 한국대표로 참석했고, 그 해 5월 남북교류를 주장하다가 입건되었으나, 검찰에서 기소유예로 풀려났습니다.”하고 소개했다.
<박정이 대장이다>
이어서 박정이 대장은 “월파 서민호 선생은 자민당 최고위원, 민중당 최고위원, 민의원의원, 민주사회당 최고위원 등을 거쳤습니다. 대통령선거에 입후보하였으나, 야당후보 단일화를 위해 사퇴했고, 제7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습니다. 한일기본조약에 반대, 월남파병반대를 하다가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는 불운을 겪었습니다. 1971년 신민당과 공당으로서의 합당을 이루지 못하고 개별 입당하였으며, 통일문제연구소를 개설했고, 1973년 정계를 떠났으며, 72세로 사망했습니다.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러졌고, 서울 교외의 신세계 공원묘지에 인장하였으나, 2004년 10월 13일 대전국민묘지 애국지사 제3묘역(93호)으로 이장하였습니다. 2001년 조선어학회 사건의 공적으로 건국훈장(애족장)을 추서 받았습니다 저서에 <이래서야 되겠는가><나의 옥중수기>가 있습니다.”하고 월파 서민호의 일생을 소개했다.
<유준상 국가정보기술연구원장이다>
유준상(국회의원, 한국정보기술)연구원장은 “월파 선생님은 고흥이 낳은 선각자입니다. 일본 미국 등에서 신문학을 공부했습니다. 월파는 미국 유학시절 동지회에서 활동할 때, 이승만 박사와 친분이 두터웠습니다. 월파가 전남 도지사 시절이었습니다. 이승만이 전국 순회차 프렌체스카 여사를 동반하고 광주를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그는 공개석상에서 서구적인 애정표현으로 프렌체스카 여사와 키스를 했고 국민들은 눈살을 찌푸렸습니다. 이때 월파 서민호는 국민들이 선생님을 하늘처럼 우러르고 있는데 노골적인 애정표현은 공식석상에서 삼가 달라고 충고했었습니다. 그때부터 월파는 이승만에게 눈에 가시가 되었습니다.”라고 일화를 소개하며, “우리가 월파 서민호를 자자손손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그가 독립운동에 앞장섰고, 우리말 우리글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고, 한국 진보주의의 맥을 이으려고 노력했다는 점입니다. 이 업적을 찾아서 함께 연구하고 기록해서 길이 남겨야 합니다.”하고 축사했다.
<황주홍 국회의원이다>
황주홍 국회위원은 “월파 서민호는 오직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특히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혹독하게 옥고를 치렀습니다. 조선회 연구회는 1921년 결성되었습니다. 사립학교 국어담당 선생님들이 월례회의를 열고 한글 연구와 토론을 했습니다. 1931년 조선어학회로 개명하여 본격적인 활동을 할 때, 독립운동의 지하조직이라는 죄목으로 급습 검거당한 대규모 사건입니다. 그때 자금조달책임을 맡은 월파 서민호는 검거된 300명중에서 33인의 주동인물로 함흥 감옥으로 이송되어 심하게 옥고를 치렀습니다. 해방 후에는 반공, 반독재 투쟁을 전개하여 8년이나 옥고를 치렀습니다. 요즘 개봉한 <말모이> 영화를 보면, 월파 서민호를 연상하게 합니다. 고흥이 낳은 선각자요. 애국자요. 위대한 정치가인 우리는 월파 서민호 선생의 업적을 본받아야 합니다.”라고 축사했다.
<송영길 국회의원이다>
송열길(前인천시장)국회의원은 “월파 서민호선생님은 고흥은 물론 국가를 대표하는 사표(師表)입니다. 특히 이승만대통령과는 정적(政敵)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거창양민학살사건으로 대립이 컸습니다. 해마다 봄은 오지만/ 거창군 신원면 박산골짜기에는/ 한 송이 진달래도 피지 못한다// 세월이 흘러도 흙이 될 수 없는/ 한 맺힌 목숨이/ 세월이 흘러도 물이 될 수 없는/ 피로 쏟은 눈물이//시퍼런 청태(靑苔)로 살아 있어/ 날선 바람 타고/ 구천을 떠돌기 때문이다// 이 시는 ‘거창양민학살사건’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6·25전쟁 중이던 1951년 2월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 지리산 일대에서 인민군과 빨치산을 토벌하던 국군이 적과 내통한 ‘통비분자’라는 혐의로 무고한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한 사건이 있습니다.”라고 서두를 꺼냈다.
송의원은 “그때 국회조사단으로 현지에 파견된 서민호는 “군에서는 사전경고도 없이 마을을 모두 불태우고 젖먹이부터 16세에 이르는 아이들 327명을 포함하여 최소한 500명을 총살했고, 증거를 없애기 위해 시체를 휘발유로 태운 다음 산에 시체를 묻었다. 죽은 사람의 성별을 보아 여자가 많다는 사실(남 223명, 여 304명)은 빨치산으로 볼 수 없다는 명백한 증거인 것이다.”하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승만대통령은 가짜 공비조작극을 연출하여 조사단의 활동을 방해했고, 군인과 경찰을 매복시켜 조사단에 총격을 가하여 조사단의 현지조사를 저지시켜 버렸습니다. 이 사건으로 이승만의 눈에 가시가 된 월파 서민호는 감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아직까지도 거창 사건은 올바른 자리매김과 뒤처리가 이루어지지 않아, 우리 현대사의 커다란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라고 한 예를 설명하며, “월파 서민호는 그 당시 이승만에게 버금가는 정치가이고, 유학자였습니다. 우리나라 정치의 선각자인 월파 서민호 선생의 일대기를 조명하여, 책으로 엮고, 다큐멘터리로 제작하여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킵시다.”하고 주제발표를 했다.
<신용수 박사이다>
신용수 박사는 “역사는 살아남은 자, 강한 자, 승자의 기록물입니다. 오늘은 월파 선생님께서 돌아가신지 45년이 됩니다. 월파 선생님은 일제강점기 때 선진 문물을 겸비한 선구자요. 우리말과 우리글을 지켜낸 애국자요. 역사의 격동기 한가운데서 온 몸을 불사른 위대한 정치가입니다. 하지만 월파 서민호의 업적은 제대로 조명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 ‘월파 서민호 기념 학술대회’를 개최한 것은 선생님의 화려했던 학창시절부터 의정활동을 하면서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고자 했던 어둡고 힘들었던 시절 등의 업적을 일일이 찾아내어 생생한 기록물을 만들자는 취지입니다. 월파 서민호 선생님의 기록물이 이 땅에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힘을 합칩시다.”하고 발표했다.
<진종근 박사이다>
진종근(전 고흥군수) 박사는 “지난해 12월 고향에 계시는 어머니께 문안인사를 가는 길에 동강면 죽산의 월파 서민호 선생님의 제각에 참배했습니다. 선생님은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 운동가로, 해방 이후에는 정치인으로 살아오셨습니다. 겨레를 사랑했고, 지역을 위해 헌신했던 그였지만, 관련된 기념사업은 물론, 학술 연구마저 부진합니다. 그의 자취는 흔적 없이 사라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월파 서민호의 생애를 재조명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려면 지역민과 학계, 문중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이 학술대회를 계기로, 월파 전기와 저작집 간행, 월파 서민호 연구 활동 지원, 월파 흔척 찾기 역사 기행, 월파 정신 계승을 위한 각종 활동을 전개해야 합니다.”하고 발표했다.
<단체사진이다>
이날 행사에는 국회출입기자클럽, 국회방송국, 세계일보, YBC연합방송국, 대한뉴스신문, 대한환경신문, 월간 Diplomacy, Break News, 월간 Korea Post, 사건 25시, 월간 Business Technology, (사)한국노벨평화재단, (사)CAB국회방송, 민주신문, 선데이타임즈, 대한방송연합뉴스, 오코리아뉴스, 서울신문, 오늘의 한국, (사)대한민국무궁화중앙회, 재경고흥향우회, 재경호남향우회 등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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