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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나무에 걸린 은유/전영관 본문

아름다운 시편들/시가 있는 하루

나무에 걸린 은유/전영관

시낭송행복플러스 2019. 7. 5. 23:39



전영관의 나무에 걸린 은유감상 / 김동원

 

 

나무에 걸린 은유

 

   전영관

 

 

 

내 안의 꽃이 다 지고 난 후에야

비로소 꽃이 보인다

 

만발해 너울거리는 자태보다

잔바람에 떨어져 낡아가는 꽃잎들이 먼저 보인다

, 저 꽃잎들은

 

어미를 잃고 헤맨 어린것의 발뒤꿈치

저를 감당하지 못해 야반도주한 청춘

이별을 참다가 뛰쳐나와 진흙 묻힌 버선

다림질하며 오시는가 바라보다 태워버린 버선

바람같이 근본도 없는 것들하고 섞이느라

평생이 한나절인 듯 녹슬어버린 몸

사랑 따위에 발목 잡혀 승천하지 못한 선녀들의 군무

왕자나 기다리는 신데렐라들의 순은 구두

죽음만큼 나른한 저승의 봄을 옮기는 나비 날개

하늘을 연모한 까닭에 나무에 피어난 수련(睡蓮)

삼천 배 앞에 미소 짓는 애기보살의 무릎

세상에서 하나뿐인 백옥을 캐다 스러진 광부의 아내

거문고 없이 앉아만 있어도 취하는 기생 손목

이마에 붙이면 지옥도 면하는 부적

보름이면 달빛을 음미하는 신의 숟가락

 

전생을 돌고 돌아온 저 하뭇한 숭어리들을

목련이라 감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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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로 어떤 시는 시의 장소를 필요로 한다. 시의 이해를 위해 특별한 장소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전영관의 시에서 그 장소는 꽃이 지고 있는 목련의 나무 밑이다. 시인은 시기도 암시하고 있다. “잔바람에 떨어져 낡아 가는 꽃잎들이란 구절이 그 시기를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때문에 이 시는 목련이 질 때 목련나무 아래서 읽어야 한다. 그러면 어지럽게 발자국처럼 떨어져 있는 목련의 꽃잎들이 시커멓게 변색되어 있는 것을 보며 저를 감당하지 못해 야반도주한 청춘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되고, 떨어진 꽃잎이 많고 갓 떨어져 여전히 아름답다면 사랑 따위에 발목 잡혀 승천하지 못한 선녀들의 군무를 아무 저항 없이 수긍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목련을 바라보면 하늘을 연모한 까닭에 나무에 피어난 수련(睡蓮)”이란 말을 꽃과 함께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며, 만약 목련나무 위로 달이 뜨는 시간의 우연을 함께 했다면 보름이면 달빛을 음미하는 신의 숟가락이라는 구절을 목련의 어느 부분에서 발견하고 아, 저것이 바로 그 숟가락이구나 하는 찬탄을 뱉을지도 모른다.

   때로 시를 읽는다는 것이 시기를 기다리는 일의 뒤일 때도 있다. 때문에 어떤 시는 잘 간직해 두었다가 시기를 맞추어 목련나무 밑으로 가져가야 한다. 그렇게 하여 때를 맞추면 시인이 우리에게 나열한 것이 모두 목련의 다른 순간이 된다. 시는 이렇게 마무리되어 있다.

 

         전생을 돌고 돌아온 저 하뭇한 숭어리들을

         목련이라 감탄하겠다

 

   ‘하뭇한 숭어리는 마음을 충만하게 채워 주는 덩어리란 뜻이다. 목련은 봄의 한때를 장식하는 꽃에 불과하지만 시의 세상에선 무수한 삶이 목련이 된다. 그때의 시는 읽는 것이 아니라 때를 맞추고 장소를 찾아가 체험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하나 삶과 목련을 맞춰 보다 보면 시인과는 정반대로 목련을 삶이라고 감탄하게 될 수도 있다.

 

  김동원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