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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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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빈방/조정인

시낭송행복플러스 2020. 3. 11. 11:27

빈방

 

   조정인

 

 

 

나는 한때 엄마를 가졌었죠

 

자니?

등 너머에서 들리던 아득한 말

 

말 이전의 망설임이 돌아누운 내 어깨를

가만가만 어루만지고 있던 어떤 밤

 

어깨를 돌리기만 하면 품을 파고 들 수 있는

옆 사람 숨소릴 헬 수도 있는

그런 단칸방

 

나는 더욱 웅크려 이불 속에 얼굴을 묻었었죠

소리 죽인 울음을 이윽히 기다리던 엄마가

다시 묻던 말

?

안 자, 대답하고 돌아눕기만 하면 되는

나의 등 뒤에 엄마가 있었어요

 

안 자, 등 너머로 대답 대신 건네주는 일을

아직 하지 못했는데

나는 그만 등 너머 빈방을 가진 사람

 

해안을 적시며 헤적이는 곡우 무렵 밤물결 같은

엄마라는 말 참 좋아요

 

나는 한 때, 엄마라는 바다와 육지를 가진 적 있죠

엄마라는 지구를 가진 적 있어요

 

 

          ⸻격월간 현대시학2020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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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인 / 1953년 서울 출생. 1998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 사과 얼마예요』『장미의 내용』 『그리움이라는 짐승이 사는 움막, 동시집 새가 되고 싶은 양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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