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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석양의 제국/손택수 본문
석양의 제국
⸺신동엽의 「산문시 1」에 붙임
손택수
나의 조국은 노을이다
노을을 위해서라면 나는 얼마든지 세금을 내고
국방의 의무를 질 용의가 있다
귀찮은 교육이며 근로도 거부하지 않으리라
나는 노을의 애국자다
노을 없는 땅과 하늘은 상상도 할 수 없다
나라가 망한다면 의병이라도 일으키리라
의열단에라도 들어가리라
내 땅의 노을과 가장 닮은 이국의 노을에
임시정부를 차릴 수도 있으리라
나는 노을의 세계화를 옹호한다
모든 마을이 맥도날드나 스타벅스로 통일되고
모든 골목 구멍가게가 편의점으로 바뀌는 그날에도
노을만은 오직 그 땅과 하늘의 특산품
제주 한림 수월봉 앞바다에 내린 노을과
강화 갯벌 위에 내린 노을이 저희들의 방언을 지켜낼 수 있다면
세계화를 마냥 거부만은 하지 않으리라
우리는 자신들의 모음을 쓰면서도 같은 노을의 형제일 터
지는 자에게 나라를 맡기자
통치술이라곤 오직 질 줄 아는 것,
져서 물들 줄 아는 것밖에 없는
자야말로 세계제국을 경영할 만하다
낙엽으로 돌아가 뿌리를 덮는 단풍처럼
하늘로 가는 나라의 신민이 되자
아직 오지 않았고 이미 와 있으며
아주 오래전에 사라진 나라
매일같이 하늘에 쓰는 실록
오! 나의 조국 노을
⸺신동엽 50주기 기념 역대 수상자 신작시집 (2019년 4월)
손택수 / 1970년 전남 담양 출생.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시 등단. 시집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외. 제22회(2004) 신동엽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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