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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마천 당신에게/문정희 본문

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사랑하는 사마천 당신에게/문정희

시낭송행복플러스 2020. 5. 17. 16:57

사랑하는 사마천 당신에게

 

문정희

 

 

 

세상의 사나이들은 기둥 하나를
세우기 위해 산다
좀 더 든든하게
좀 더 당당하게
시대와 밤을 찌를 수 있는 기둥

그래서 그들은 개고기를 뜯어 먹고
해구신을 고아 먹고
산삼을 찾아
날마다 허둥거리며
붉은 눈을 번득인다

그런데 꼿꼿한 기둥을 자르고
천년을 얻은 사내가 있다
기둥에서 해방되어 비로소
사내가 된 사내가 있다

기둥으로 끌 수 없는
제 눈 속의 불
천 년의 역사에다 당겨놓은 방화범이 있다

썰물처럼 공허한 말들이
모두 빠져 나간 후에도
오직 살아있는 그의 목소리
모래처럼 시간의 비늘이 쓸려 간 자리에
큼지막하게 찍어놓은 그의 발자국을 본다

천 년 후의 여자 하나
오래 잠 못 들게 하는
멋진 사나이가 여기 있다

 

 

 

문정희/ 1947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했다. 동국대학교 국문과 졸업, 동국대학교 대학원 졸업, 서울여자대학교 대학원 문학박사 학위 취득. 1969년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문정희 시집', '새떼', '혼자 무너지는 종소리', '찔레', 아우내의 새', '남자를 위하여', '하늘보다 먼곳에 매인 그네', '별이 뜨면 슬픔도 향기롭다', '남자를 위하여', '오라, 거짓 사랑아',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나는 문이다', '오라 거짓 사랑아', '다산의 처녀' 등이 있다. 시선집 '어린 사랑에게', 시극집 '도미', 미국 뉴욕에서 영역 시집 'Wind flower', 'Woman on the terrace' 가 출판되었고 그 외에도 독일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알바니아어 등으로 번역 소개되었다.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동국대 석좌교수, 고려대 문창과 교수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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