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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따라 시따라, 오늘의 암송시 친구에게/박두순 시인님 본문
나 혼자 한강따라 걷기 챌린지 1코스 - 맑은 물이 흐르던 개천
*코스: 서울시청 - 청계천 다리 -살곶이다리 - 한양대역 9.2km
*일시: 2020년 12월 29일 화요일 10시 -
*암송시: 친구에게/ 박두순
*청계천 다리 22개
모전교 - 광통교 - 광교 - 장통교 - 삼일교 -수표교 - 관수교 - 세운교 -배오개다리 -새벽다리 - 마전교 - 나래교 -버들다리(전태일다리) - 오간수교 -맑은내다리 -다산교 -영동교(띄엄다리,영미교) -황학교 - 비우당교 - 무학교 - 두물다리 -고산자교
*서울시청/ 서울특별시의 행정을 총괄하는 지방행정기관으로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110에 위치
시장은 장관급 정무직공무원으로,, 부시장은 차관급 정무직공무원으로 보한다.
서울특별시청 청사는 일제강점기 1926년 때, 경성부청(京城府廳)으로 건립되었다가 광복 이후 서울시청 건물로 쓰이게 되었다. 이 건물은 6차례 증축되었다.
1962년 증축된 북관과 1986년 증축된 신관은 새로운 청사를 짓기 위해 2006년 초에 철거되었다. 새로운 청사가 들어서면서 구 청사는 서울도서관으로 용도가 바뀌었다.
1975년부터 전광판 시계를 달았는데, 이명박 시장 재임 기간에 대형 바늘시계로 바뀌었다. 시계의 이름은 '바라'이다.
현재 서울특별시청의 시금고 업무를 맡고 있는 은행은 우리은행이며, 조선상업은행 시절인 1915년에 경성부청 금고 계약을 맺은 것을 시작으로 100년 동안 서울의 시금고 업무를 맡고 있다. "새 건물 1565억원 21,500평 핵심 키워드는 전통, 시민, 미래" 이다
*스프링모형 - 청계천의 발원지를 의미하는 직류폭포
*청계천/ 청계천 복원과 함께 청계광장에서 중랑천 합수지점까지 8.12㎞의 청계천에는 총 22개의 다리가 들어섰다. 모전교, 광통교, 광교, 수표교, 배오개다리, 새벽다리 (…) 두물다리, 고산자교. 사다리처럼 하천을 가로지른 다리에는 각각의 이름이 붙여졌다. 그 가운데 평화시장 앞의 ‘전태일다리’가 있다.
총길이 5.84km, 하루 물 소비량은 12만t이다. 청계천은 서울을 도읍으로 정한 조선시대부터 정비가 시작되었다. ‘개천’이라는 이름이 ‘청계천’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 때였다. 방치되어 있던 청계천은 1925년부터 종로구 신교동에서 도렴동까지, 1937년에는 태평로에서 무교동 구간이 복개되었다. 이후 1955년 광통교 상류를 시작으로 1970년∼1977년 청계 8가에서부터 신답철교까지 또다시 복개되었다.
1960~70년대 근대화의 상징이었던 청계천은 자연환경과 역사문화를 복원한다는 취지로 복원사업이 시작되었다. 복원 구간은 태평로에서 신답철교까지이며, 공사는 2003년 7월부터 2005년 9월까지 약 3,900억원을 투입하여 진행되었다. 청계천 복원으로 청계천은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모전교- 중구 무교동 3번지로 오늘날 서린동에서 무교동으로 통하는 사거리 지점인 청계천에 있던 다리이다. 백운동천과 삼청동천이 합류하는 지점 조금 아래쪽이다. 조선시대 이 다리 모퉁이에 토산 과일을 파는 가게인 果廛(毛廛이라고도 함)이 있었으므로 毛廛橋,毛前橋,毛橋 ,모전다리라고 하였으며, 달리 모퉁이가게다리라 혹은 한자명으로 隅廛다리라고도 하였다. 일명 무교동과 관련되어 武橋라고도 하였다. 일제강점기 사진자료를 보면 돌로 만든 석교이며, 난간은 장통교와 비슷하고 길이는 4칸이었다. 1937년 태평로에서 무교동 사거리까지 암거화하면서 다리가 없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청계천을 복원하면서 종로구 서린동 11번지와 중구 무교동 14번지 사이 청계천 무교동길에 다리를 만들고 옛 이름을 따서 모전교라고 하였다. 폭 23m, 길이 19.5m로 대림산업(주)과 삼성건설(주)에 의해 2005년 9월 30일 준공되었다.
*광통교-종로네거리에서 을지로네거리 방향으로 나가다가 청계로와 만나는 길목의 청계천 위에 놓여있던 다리이다. 조선시대 광통방에 위치하고 있어 광통교 혹은 광교라고 불렀고, 소광통교와 구분하여 대광통교로도 불렀으며, 일명 큰광교,큰광통교로도 불렀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北廣通橋로, ≪승정원일기≫에는 廣沖橋로도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 도성 내에서 가장 큰 다리로 길이 약 12m, 폭 15m로 길이보다 폭이 넓은 다리였다. 조선 초 도성을 건설할 때 흙으로 다리를 놓았으며, 태종 10년(1410) 큰 비로 다리가 유실되어 태조 이성계의 왕비 신덕왕후 강씨의 능인 貞陵 옛 터의 병풍석 등 석물을 사용하여 석교로 만들었다. 이후 1760년 庚辰濬川을 한 지 2년 후인 영조 38년(1762) 다리의 기초 부분 개축과 난간을 보수하였다. 이후 1899년 종로에서 남대문 구간의 전차가 가설되면서 광통교 동쪽에 전차선로가 놓이게 되어 일부 훼손되었고, 1910년 8월에는 광통교 동쪽에 놓여 있던 전차선로를 복선화하면서 광통교 위로 전차가 다니게 되어 철근콘크리트교로 확장됨에 따라 다리 본체는 도로 밑에 묻히게 되었다. 1923년 청계천 암거공사 때 정릉의 신장석으로 이루어진 광통교 북측 교대 한가운데에 콘크리트 하수관을 박아 하수를 배출하였다. 1958년에는 청계천 복개공사가 시작되면서 광통교의 난간만 창경궁,창덕궁 등으로 이전되었고 다리 본체는 그대로 다시 묻히게 되었다. 이후 2005년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되었다. 광통교에 놓여진 석물인 신장석과 隅石 등에 새겨진 세련되고 정교한 조각은 당대 최고의 석공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예술적 가치가 높다.
*광교-원래는 광통방(廣通坊)에 있는 큰 다리라는 뜻의 대광통교(大廣通橋)이다. 실제로 길이 약 12.3m보다 폭이 더 넓은 약 14.4m의 다리였다. 또, 소광통교(小廣通橋)와 구분하여 대광교(大廣橋)라고도 하였고 세종실록 지리지(世宗實錄 地理志)에는 북광통교(北廣通橋)로 기록되어 있다. 약칭인 광교(廣橋), 광충교(廣冲橋) 등으로도 불리었으며, 도성 안 개천에서 여섯 번째에 있었다고 해서 육교(六橋)라고도 하였다. 광교는 후에 이 일대를 지칭하는 지명으로 사용되고 있다.
*장통교-중구 장교동 51번지와 종로구 관철동 11번지 사이 청계천에 놓였던 다리이다. 이 근방이 조선시대 장통방이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며, 이 다리 부근에 긴 창고가 늘어서 있었다고 하여 長倉橋,장찻골다리, 줄여서 長橋라고도 불렀다. 이 외에도 <경도오부북한산성부도>에는 長楸橋, <슈션전도>에는 장추골다리로 표기하고 있다. 1480년 이전에 설치되었고, 다리 서쪽 기둥에 ‘辛未改造’와 ‘己亥改造’라고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두 차례의 보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리에는 교각이 없었고, 1929년 홍수로 인해 붕괴되었다가 복구되기도 하였다. 이 일대는 일찍부터 도성 안 상업의 중심지가 되어 시전상인들이 모여 살았으며 중앙과 지방관청의 연락사무를 맡아보던 京主人들의 본거지이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19세기 개화파의 선각자적 역할을 수행한 유대치가 장통방, 지금의 보신각 뒤편에 살았다.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종로구 관철동 71번지와 중구 수하동 37번지 사이 청계천에 다리를 만들고 옛 이름을 따서 장통교라고 하였다. 폭 11.8m, 길이 22m로 2005년 9월 30일 대림산업(주)과 삼성건설(주)에 의해 준공되었다
*삼일교(화려한 다리밑 그림)-종로구 관철동 85번지와 중구 장교동 86번지 사이 청계천 삼일로에 있는 다리이다.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을 한 뒤 전국에서 일제의 탄압에 항거하는 시위운동을 벌였기 때문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 도로 이름을 삼일로라 하였고 다리 이름도 여기서 유래되었다. 다리 인근의 인사동과 명동성당 등을 연계한 근대 건축의 이미지를 반영하고 있다. 2005 년 9월 30일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폭 43.5m, 연장 22.6m로 대림산업(주)과 삼성건설(주)에 의해 준공되었다.
*한화 불꽃길 -다른 날 아득한 고통속의 바다 속에서도 다시금 연꽃을 불꽃 속에 피게 하리 –만해 한용운(1879-1944 -불교사상과 저항정신을 집약적으로 표현한 시) 쓴 심우시중 열 번째 시 입전수수,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 후 체포되어 3년 형을 선고 받고 복역 1926년에 '님의 침'묵으로 저항문학에 앞장
*불꽃으로 타오르는 사랑을 하고 싶다. 타오르고 나면 재만 남아도 뛰어들고 싶다 -용혜원 -
*저 먼 별들 오랜 불꽃, 그립다는 그 말의 주인인 그대, 가시밭길을 걷는 맨발의 소풍이시여 -이응준-
*불꽃이 꺼진 뒤에도 살아야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불이 꽃이 되기까지 견딘 세월만큼 오래 -최영미-
*수표교-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8호이다. 길이 27.5m, 너비 7.5m, 높이 4m인 수표교는 1406년 인공으로 만든 청계천 위에 가설된 다리 중 하나이다. 청계천에 수표교가 처음 세워진 것은 1441년인데, 이때는 나무로 된 것이었고 현존하는 것은 후대에 보수한 것이다. 다리의 기둥은 2단으로 쌓은 4각형의 큰 석재로 되어 있다. 기둥 위에 긴 휘대를 걸치고 천판석을 깔아 다리의 바닥을 만들었으며, 천판석 사이사이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지주석을 세웠다. 지주석 중간에는 6각형으로 깎아 난간석을 끼웠고, 난간석 중앙에는 받침돌을 놓아 견고하게 받치도록 했다. 이 다리는 1959년 청계천 복개공사 때 장충단 공원 입구로 옮겨졌다. 물속에 있던 수표석(보물 제838호)은 현재 세종대왕기념관에서 보존하고 있다.
*관수교-종로구 관수동 129번지와 중구 수표동 122번지 사이 청계천에 있는 다리이다. 다리 이름은 인근의 동명인 관수동에서 유래되었다. 조선시대 이곳에 청계천 준설사업을 위한 준천사를 설치하고 청계천의 수위를 관측하였으므로 1918년 일제가 지금의 청계천3가사거리에 다리를 놓고 관수교라고 하였다. 청계천 복개로 다리가 없어졌다가 2005년 9월 30일 청계천을 복원하면서 전통 한옥의 대청양식을 도입한 아치교 형태로 새로 건설하였다. 폭 25.5m, 길이 22.5m로 대림산업(주)과 삼성건설(주)에 의해 준공되었다
*세운교-종로구 장사동 182번지와 중구 산림동 200번지 사이 청계천에 있는 다리이다. 다리 옆에 세운상가가 있어 다리 이름을 세운교라고 하였다. 세운상가에 조명가게가 많아 이를 특성화하여 다리에 빛을 표현하였다. 폭 25.5m, 길이 23.4m로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2005년 9월 30일 대림산업(주)에 의해 준공되었다
*배오개다리-종로구 예지동 189번지와 중구 주교동 99번지 사이 청계천에 있는 다리이다. 다리 이름은 현 종로4가네거리에 배오개〔梨峴〕라는 고개가 있던 데서 유래되었으며, 배오개교라고도 불린다. 다리 형상은 배오개길을 넘는 사람들의 만남을 상징화하였다. 폭 25.5m, 길이 23.4 m로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2005년 9월 30일 대림산업(주)에 의해 준공되었다.
*새벽다리-종로구 예지동 332번지와 중구 주교동 45번지 사이 청계천에 있는 다리이다. 시장 천막의 이미지를 적용하여 동대문 재래시장의 역사성과 향수를 연출하고자 설계되었다. 2004년 4월 24일 서울특별시지명위원회에서 새벽시장의 활기와 향수를 담은 명칭이라고 하여 새벽다리라고 제정하였다. 폭 6m, 길이 22.8m로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2005년 9월 30일 GS건설과 현대산업에 의해 준공되었다.
*나래교-종로구 종로5가 321번지와 중구 당산동 19번지 사이 청계천에 있는 다리이다. 나비의 힘찬 나래짓을 이미지화 하였으며, 3차원 아치와 케이블로 나비의 형상화를 유도하였다. 나비가 날개를 활짝 편 형상으로 동대문 의류상권이 세계 패션 1번지로 비상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폭 6m, 길이 22.8m로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2005년 9월 30일 GS건설과 현대산업에 의해 준공되었다.
*전태일 다리(버들다리)-
전태일다리의 본래 이름은 버들다리였다. 다리가 놓인 지 5년 뒤인 2010년, 전태일40주기범국민행사위원회는 버들다리 개명 운동을 벌여 2년 뒤 전태일다리로 변경했다
“하루에 하숙비가 120원인데 일당 오십원으론 어림도 없지만 다니기로 결심을 하고, 모자라는 돈은 아침 일찍 여관에서 손님들의 구두를 닦고 밤에는 껌과 휴지를 팔아서 보충해야 했다. 뼈가 휘는 고된 나날이었지만, 기술을 배운다는 희망과 서울의 지붕 아래서 이 불효자식의 고집 때문에 고생하실 어머니 생각과 배가 고파 울고 있을지도 모르는 막내동생을 생각할 땐 나의 피곤함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버들다리-종로구 종로5가 319번지와 중구 을지로6가 17번지 사이 청계천에 있는 다리이다. 보행자의 이동 편리를 위해 차도와 보도를 분리하여 파고라를 설치함으로써 도심 속의 정원을 연출하였다. 다리 이름은 과거 오간수문 상류에 왕버들이 많았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폭 17m, 길이 23.3m로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2005년 9월 30일 GS건설과 현대산업에 의해 준공되었다.
*동대문시장-1904년 7월 14일 개장했다. 1970년 12월 종로6가 맞은편에 기존의 동대문시장보다 훨씬 큰 규모로 개설된 동대문종합시장과 청계천이 복개되면서 인근에 생긴 평화시장까지 아울러 동대문시장이라 한다.
동대문시장은 남대문시장과 함께 최대 규모의 종합시장이다. 도매를 주로 하고 있어서 백화점이나 일반 소매시장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며, 어물전·건어물·포목·야채 등 일반 백화점에서 취급하기 힘든 품목들을 다양하게 취급하고 있다. 1998년 거평 프레야, 밀리오레, 1999년 두산타워 등 대형 쇼핑 매장이 들어섬으로써 동대문 시장은 기존 재래시장의 이미지를 벗어나 패션 전문 시장으로 변신했으며, 일본·중국 등 외국인 관광객의 명소로 이름이 높아졌다.
*오간수교-청계천 물줄기가 도성을 빠져나가는 지점, 즉 동대문에서 을지로5가로 가는 청계천에 놓여 있던 다리이다. 조선시대 한성에 성곽을 쌓으면서 청계천 물이 원활하게 흘러갈 수 있도록 아치형으로 된 5개의 구멍을 만들어 홍예교라고도 하였다. 그리고 홍예 위에 성곽을 쌓아 올렸으며, 아치 모양의 구멍을 서로 연결하여 성벽 안쪽으로 장대석을 연결하여 다리를 놓았다. 이 다리는 다섯 칸의 수문을 설치했다고 하여 오간수다리,오간수문 등으로 불렀으나 성종 12년(1481)까지만 해도 수문이 3개였고 후에 몇 차례 증축을 거쳐 5개의 수문으로 확장되었다. 이 수문은 도성 안에서 죄를 지은 자가 도성을 빠져나가거나 혹은 몰래 도성 안으로 잠입하는 사람들의 통로로 곧잘 이용되었다. 실제로 명종 때 전국적으로 사회를 흉흉하게 만들었던 임꺽정의 무리들이 도성에 들어와 典獄署를 부수고 도망갈 때에도 이 오간수문을 통해 달아났다. 1907년 일제가 청계천 물이 잘 흘러가게 한다는 명목으로 오간수문을 모두 헐어버리고 콘크리트 다리로 교체하였다가 후에 그 위의 성곽이 훼손되면서 함께 없어졌다
*맑은내 다리-동대문구 창신동 430번지와 청계천7가 신당동 213번지 사이 청계천이 있는 다리이다. 청계천을 순 우리말로 바꾼 이름이다. 나비의 힘찬 비상을 아치구조와 크로스 케이블로 조화시켜 힘찬 도약을 연출함으로써 패션 중심의 상징성을 부여하였다. 폭 13.5m, 길이 26.3m로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2005년 9월 30일 GS건설과 현대산업에 의해 준공되었다
*다산교-성동구 흥인동 1번지와 종로구 창신제1동 401번지 사이 청계천에 있는 다리이다. 다산 정약용의 호를 따서 붙인 다산로로 이어지는 다리인 데서 다산교라고 하였다. 폭 44.4 m, 길이 29.5m로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2005년 9월 30일 GS건설과 현대산업에 의해 준공되었다
*영동교-성동구 성수동과 강남구 청담동을 연결하는 다리이다.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귀양갈 때 단종비 정순왕후가 이 다리까지 배웅 나와 이별하였는데 이후 다시는 만나지 못하고 영영 이별하였다고 하여 영 이별 다리라고 불렀다. 2005년 9월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새로 영도교가 가설되었다)
한강의 남북을 연결하는 일곱 번째 다리로 서울시가 도심권 인구분산과 영동지구 개발을 위해 1970년 8월 13일 착공하여 3년 3개월만인 1973년 11월 8일에 완공하였다. 폭 25m, 총길이 1,065m이며 6차선 도로와 인도를 갖추었다. 처음에는 영동교로 부르다가 한강에 놓인 다리를 대교로 바꾸면서 1984년 11월 영동대교가 되었다. 이 다리의 개통으로 청담동,삼성동 일원의 상업지역과 주거지역의 발전을 촉진하였고, 또한 이미 가설되어 있던 한남대교와 잠실대교에 밀집되던 교통량을 분배시켜 교통 소통량을 원활하게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황학교-중구 황학동과 성동구 상왕십리동 사이 청계천로에 있는 다리이다. 2005년 9월 청계천 복원과 함께 준공된 다리로, 옛날 이곳 논밭에 황학이 날아왔다는 전설에 따라 동명이 황학동이 되었는데, 다리 이름은 동명에서 비롯되었다 청계천 복원공사와 함께 가설되었는데 폭 30.6m, 길이 45.1m로 (주)(주)현대건설 외 1개사가 함께 시공하여 2005년 9월 30일 준공되었다.
*비우당교-조선 세종때 정승을 지낸 청백리 하정 유관이란 분이 장마철에 우산을 쓰고 살 정도 청빈하였는데, 조선 후기 실학자인 지봉 이수광이 이곳에 작은 집을 짓고 당호를 비우당이라 하였고, 2005년 9월 청계천 복원시 이 다리를 준공하면서 다리의 이름을 비우당교라 하였다
*무학교-조선시대 무학대사가 도읍을 정하기 위해 자리를 살피던 중 왕십리지역까지 왔으므로 도로명을 무학로라 하였고, 여기서 다리 이름이 유래하였고, 2005년 9월 준공되었다
*두물다리-다리 바로 아래쪽에서 청계천과 정릉천 두 물줄기가 합해지므로 두물다리라고 하였다. 2005년 9월 청계천 복원과 함께 준공되었다
*고산자교-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와 성동구 마장동 470번지 사이 청계천에 있는 다리이다. 다리 이름은 이 다리를 지나는 가로명이 1984년 조선시대 지도 제작에 힘써 <대동여지도>를 만든 古山子 金正浩의 호를 따서 고산자로라고 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폭 43.2m, 길이 88m로 2005년 9월 30일 (주)현대건설(주)에 의해 준공되었다
*살곳이 다리-성동구 사근동 102번지 남쪽 현재 성동교 동쪽에 위치해 있는 돌다리로서 중랑천에 놓여 있다. 살곶이 앞에 있다 하여 살곶이다리, 또는 살꽂이다리라고 하였고 한자명으로 箭串橋라고 한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아들 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거쳐 태종으로 등극하자 함흥으로 내려가 한양으로 돌아오지 않음으로써 이방원의 등극을 부정하였다. 그후 신하들의 간곡한 청으로 함흥에서 돌아오는 태조를 태종이 이곳 중랑천 하류 한강가에서 천막을 치고 아버지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때 태조가 태종을 향해 활을 쏘았으나 맞히지 못하고 화살이 땅에 꽂혀 이 지역을 화살이 꽂힌 곳이라 하여 살꽂이 혹은 살곶이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 다리는 조선시대 다리로는 가장 길었으며 濟盤橋라고도 불렀다. 현재는 중간 부분이 훼손된 채 양쪽 가장자리만이 원형을 보존하고 있으며 사적 제160호로 지정되어 있다.
*한양대역-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성동구 사근동에 있는 서울 지하철 2호선의 전철역이다. 이 역부터 잠실나루역까지는 지상 구간이고, 합정역까지는 지하 구간이다. 1983년 6월 30일으로 역명 결정
*한양대-서울특별시 성동구에 본교를 두고 있는 사립 종합대학. 1939년 7월에 설립된 동아공과학원이 모체이다. 1947년 4년제 정규대학으로 승격되었고, 1959년에 종합대학교로 승격하면서 교명도 한양대학교로 변경했다. 이공계 분야에서 특히 명성이 높다. 교훈은 '사랑의 실천'이다. 본교는 서울시 성동구에, 분교인 에리카캠퍼스는 안산시 상록구에 소재한다
-이상 출처 다음백과-
친구에게
박두순 (1950 - 아동문학가, 시인)
친구야
너는 나에게 별이다
하늘 마을 산자락에
망초꽃처럼 흐드러지게 핀 별들
그 사이의 한 송이 별이다
눈을 감으면
어둠의 둘레에서
돋아나는 별자리 되어
내 마음 하늘 환히 밝히는 넌
기쁠때도 별이다
슬플때도 별이다
친구야
네가 사랑스러울 땐
사랑스런 만큼 별이 돋고
내가 미울땐 미운만큼 별이 돋았다
친구야
숨길수록 빛을 내는 너는
어둔 밤에 별로 떠 내가 밝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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