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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꼭짓점들 (외 1편)/최연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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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꼭짓점들 (외 1편)/최연수

시낭송행복플러스 2021. 3. 4. 06:48

나만 아는 꼭짓점들 (외 1편)

 

최연수

 

 

 

컹컹 짖는 언덕 아래와 건너다보이는 불빛과 나는

조용한 삼각

늦은 밤을 견디는 꼭짓점들이다

 

소문은 잠들어

남은 불빛을 당겨

내가 다 써버렸다는 건 아무도 모른다

 

안경을 쓰는 것보다

깜깜한 나를 환히 볼 수 있다

미래를 보기 위해

접질린 길은 한걸음 물러서야 보이고

더 아파본 뒤에야 빠져나갈 구멍이 생긴다

 

새벽달이 끼어들어도

생각하는 반대편과 생각이 있다는 듯 짖어대는 언덕만이 나와 가능한 삼각

불면은 배경이다

 

홀수에 익숙하지 않은 짝수들

 

안에서 사랑하고 밖에서 의심했다

 

자신도 모르게 덩치 커진 아우성은

소란스러운 고독 속에서만 물리칠 수 있다

어둠이 한 점을 갉아먹은 뒤에야 들어서는

외로운 삼각

 

모서리를 비추는 거울은 여전히 네모

각자 툭 튀어나온 꼭짓점도 짝수라 믿는다

 

 

드므

 

 

 

주술이 통하는 곳은 얼굴

신은 가장 잘 속아 넘어가는 것들로 이목구비를 만들엇다

 

어떤 사무친 마음 있는지

물거울 속 또렷한 얼굴이 중얼거린다

수피가 재빨리 표정을 지운다

 

어느 궁에서 본 드므 속엔 당황한 불이 있었다

슬며시 다가와 비추는 순간 말끄러미 올려다봤다는 화마

떠다니는 달에 황급히 얼굴을 벗어 걸어도

푸시시 불은 꺼졌다

 

얼마나 부끄러웠으면 자신을 꺼버려야만 했을까

놀란 걸음이 서둘러 빠져 나가고

잠시 고요한 파문만 남았을 것이다

 

불을 다스리는 건 냉수밖에 없어,

뜨거운 속을 다스려도 여전한 여울목

남은 화기가 약수 한 통 받아들고 오솔길을 내려간다

 

냉장고를 열면

방금 다녀간 갈증이 흔들리다 잦아들고

 

유리컵으로 옮긴 거울 속엔

여전히 얼굴이 화끈거린다

 

 

⸻시집 『안녕은 혼자일 때 녹는다』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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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수 / 강원 양구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졸업. 2015년 〈영주일보〉 신춘문예, 《시산맥》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누에, 섶을 뜨겁게 껴안다』 『안녕은 혼자일 때 녹는다』. 평론집 『이 시인을 조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