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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남향 南向 (외 1편)/이문재 본문

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남향 南向 (외 1편)/이문재

시낭송행복플러스 2021. 4. 13. 06:54

남향 南向 (외 1편)

 

이문재

 

 

 

그땐 그 사람이 남쪽이었습니다

그때는 그 한 문장이 정남향이었습니다

덕분에 한 시절 잘 살아낼 수 있었습니다

 

봄이 이듬해 봄 만나기를 서른 몇 차례

많은 시대가 한꺼번에 왔다가 사라졌습니다

오래된 미래는 더 오래가 되었고

온다던 미래는 순식간 지나가 버렸습니다

 

꽃 진 자리에서 하늘을 보며 생각합니다

나는 지금 누구에게 남쪽일 수 있을까요

우리들은 어느 생에게 정남진일 수 있을까요

 

그때는 여기저기 남쪽이 많았습니다

더불어 함께 남쪽을 바라보던

착하되 강하고 예민하되 늠름한 벗들이

도처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그랬습니다

 

남쪽은 저기 여전히 맑고 푸르러 드높은데

이 겨울이 봄여름가을을 건너뛰어

다음의 긴 겨울을 만나고 있습니다

처음처럼 처음 같은 마지막처럼

 

 

 

전환 학교

 

 

 

우리는 이야기 속으로 던져진 존재

우리를 키운 것은 9할이 이야기다

이야기를 바꿔야 미래가 달라진다

 

*

 

심청이 아빠에게

공양미 삼백 석 영수증을

건네며 말했다

 

다음엔 아빠가 빠져

 

*

 

왼종일 물을 긷던 콩쥐가

팥쥐 손을 부여잡고 말했다

 

우리 가출하자

 

*

 

마침내 거북이가 걸음을 멈추고

잠들어 있는 토끼를 깨웠다

 

토끼야, 바다로 가야겠다

 

*

 

학교 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

 

학교 종이 땡땡땡

어서 가보세

아이들이 우리를 기다린다네

 

 

⸺계간 《시와 시학》 2021년 봄호, ‘줌인 시인, 이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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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재/ 1959년 경기도 김포 출생. 1982년 동인지 『시운동』에 참여하며 등단. 시집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산책시편』『마음의 오지』『제국호텔』『지금 여기가 맨 앞』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