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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2013년 9월 26일 오전 08:37 본문
가을의 시
장석주
가을이 오면
어제 굶은 자를 하루 더 굶게 하고
오래된 연인들을 헤어지게 하고
슬픈 자에겐 더 슬픔을 얹어 주소서.
부자에게선 재물을 빼앗고
학자에게서는 치매를 내리소서.
재물 없이도 행복할 수 있음을 알게 하고
닳도록 써먹은 뇌를 쉬게 하소서.
육상 선수의 정강이뼈를 부러뜨려
그 뼈와 근육에 긴 휴식을 내리소서.
수도자들과 사제들에게는
금욕의 덧없음을 알게 하소서.
전쟁을 계획 중인 자들은
더 호전적이 되게 해서
도처에 분쟁과 혁명과 전쟁이 일어나게 하소서.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시를 써 온 자들은
서정시의 역겨움을 깨닫게 해서
이제 그만 붓을 꺾게 하소서.
그리하여 시집을 찍느라
열대우림이 사라지는 일이 없게 하소서.
다만 고요 속에서 시들고 마르고 바스러지는
저 무수한 멸망과 죽음들이
이 가을에 얼마나 큰 축복이고 행운인지를
부디 깨닫게 하소서.
- 『시와 사상』2008년 가을호
장석주/ 1955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1975년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햇빛사냥'(1979), '완전주의자의 꿈'(1981), '그리운 나라'(1984), '어둠에 바친다'(1985), '새들은 황홀 속에 집을 짓는다'(1987), '어떤 길에 관한 기억'(1989), '붕붕거리는 추억의 한 때'(1991), '크고 헐렁헐렁한 바지'(1996),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1998), '간장 달이는 냄새가 진동하는 저녁'(2001), '물은 천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2002), '붉디붉은 호랑이'(2005), '절벽'(2007), '몽해항로'(2010) 등이 있다. 지금은 경기도 안성에서 전업작가로 살고 있다.
술 마시기보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더 좋아하고, 그보다 더 좋아하는 건 산길과 들길을 하염없이 걷는 것이다. 말하기보다 침묵을 더 좋아하고, 운동보다 명상을 더 자주 한다. 재즈와 고전음악을 즐겨 듣고,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한 해에 일만 쪽 이상의 책을 읽는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로 서른 해 넘게 쉬지 않고 글을 쓰며 살아왔다. 써낸 책을 합하면 50여 권에 이른다. 아홉 해 전에 서울을 떠나 경기도 안성에 ‘수졸재’라는 집을 짓고 살며, 국악방송(FM 99.1Mhz)의 데일리 프로그램인 '장석주의 문화사랑방'을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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