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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시 모음 본문
사진-다음카페이미지
5월/ 조병화
스물을 갓 넘은 여인의 냄새를
온몸에 풍기며
온갖 꽃송이들이 물 돋은 대지에
나무 가지 가지에 피어난다.
흰구름은 뭉게뭉게 라일락의
숫푸른 향기를 타고
가도가도 고개가 보이지 않는
푸른 먼 하늘을 길게 넘어간다.
아, 오월은 여권도 없이 그저
어머님의 어두운 바다를 건너
뭣도 모르고
내가 이 이승으로 상륙을 한 달
해마다 대지는 꽃들로 진창이지만
까닭 모르는 이 허전함
나는 그 나른한 그리움에 취한다.
오, 오월이여
5월 편지/ 도종환
붓꽃이 핀 교정에서 편지를 씁니다
당신이 떠나고 없는 하루 이틀은 한 달 두 달처럼 긴데
당신으로 인해 비어 있는 자리마다 깊디깊은 침묵이 앉습니다
낮에도 뻐꾸기 울고 찔레가 피는 오월입니다.
당신 있는 그곳에도 봄이면 꽃이 핍니까
꽃이 지고 필 때마다 당신을 생각합니다.
어둠 속에서 하얗게 반짝이며 찔레가 피는 철이면
더욱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은 다 그러하겠지만
오월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가 많은 이 땅에선
찔레 하나가 피는 일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 세상 많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을 사랑하여
오래도록 서로 깊이 사랑하는 일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 생각을 하며 하늘을 보면 꼭 가슴이 메입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서로 영원히 사랑하지 못하고
너무도 아프게 헤어져 울며 평생을 사는지 아는 까닭에
소리내에 말하지 못하고 오늘처럼 꽃잎에 편지를 씁니다.
소리 없이 흔들릴는 붓꽃잎처럼 마음도 늘 그렇게 흔들려
오는 이 가는 이 눈치에 채이지 않게 또 하루를 보내고
돌아서는 저녁이면 저미는 가슴 빈자리로 바람이 가득가득 불어옵니다.
뜨거우면서도 그렇게 여린 데가 많던 당신의 마음도
이런 저녁이면 바람을 몰고 가끔씩 이 땅을 다녀갑니까
저무는 하늘 낮달처럼 내게 와 머물다 소리 없이 돌아가는
사랑하는 사람이여
5월의 어느날/ 목필균
산다는 것이
어디 맘만 같으랴
바람에 흩어졌던 그리움
산딸나무 꽃처럼
하얗게 내려앉았는데
오월 익어가는 어디쯤
너와 함께 했던 날들
책갈피에 접혀져 있겠지
만나도 할 말이야 없겠지만
바라만 보아도 좋을 것 같은
네 이름 석 자
햇살처럼 눈부신 달입니다
논물 드는 5월에/ 안도현
그 어디서 얼마만큼 참았다가 이제서야 저리 콸콸 오는가
마른 목에 칠성사이다 붓듯 오는가
저기 물길 좀 봐라
논으로 물이 들어가네
물의 새끼, 물의 손자들을 올망졸망 거느리고
해방군같이 거침없이
총칼도 깃발도 없이 저 논을 다 점령하네
논은 엎드려 물을 받네
물을 받는, 저 논의 기쁨은 애써 영광의 기색을 드러내지 않는 것
출렁이며 까불지 않는 것
태연히 엎드려 제 등허리를 쓰다듬어주는 물의 손길을 서늘히 느끼는 것
부안 가는 직행버스 안에서 나도 좋아라
金萬傾 너른 들에 물이 든다고
누구한테 말해주어야 하나, 논이 물을 먹었다고
논물은 하늘한테도 구름한테도 물을 먹여주네
논둑한테도 경운기한테도 물을 먹여주네
방금 경운기 시동을 끄고 내린 그림자한테도,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누구한테 연락을 해야 하나
저것 좀 보라고, 나는 몰라라
논물 드는 5월에
내 몸이 저 물 위에 뜨니, 나 또한 물방개 아닌가
소금쟁이 아닌가
5월의 사랑/ 송수권
누이야 너는 그렇게는 생각되지 않는가
오월의 저 밝은 산색이 청자를 만들고 백자를 만들고
저 나직한 능선들이 그 항아리의 부드러운 선들을 만들
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가
그렇다면 누이야 너 또한 사랑하지 않을 것인가
네 사는 마을 저 떠도는 흰구름들과 앞산을 깨우는
신록들의 연한 빛과 밝은 빛 하나로 넘쳐흐르는 강물을
너 또한 사랑하지 않을 것인가
푸른 새매 한 마리가 하늘 속을 곤두박질하며 지우는
이 소리 없는 선들을, 환한 대낮의 정적 속에
물밀듯 터져오는 이 화녕끼 같은 사랑을
그러한 날 누이야, 수틀 속에 헛발을 딛어
치맛말을 풀어 흘린 춘향이의 열두 시름 간장이
우리네 산에 들에 언덕에 있음직한 그 풀꽃 같은 사랑
이야기가 절로는 신들린 가락으로 넘쳐흐르지 않겠는가
저 월매의 기와집 네 추녀끝이 허공에나 뜨는 날.
그 5월에 / 곽재구
자운영 흐드러진 강둑길 걷고 있으면
어디서 보았을까
낯익은 차림의 사내 하나
강물 줄기를 거슬러 올라간다
염색한 낡은 군복 바지에
철 지난 겨울 파커를 입고
등에 맨 배낭 위에 보랏빛 자운영
몇 송이 꽃혀 바람에 하늘거린다
스물 서넛 되었을까
여윈 얼굴에 눈빛이 빛나는데
어디서 만났는지 알지 못해도 우리는 한 형제
옷깃을 스치는 바람결에 뜨거운 눈인사를 한다
그 오월에 우리는 사랑을 찾았을까
끝내 잊었을까 되뇌이는 바람결에
우수수 자운영 꽃잎들이 일어서는데
그 오월에 진 꽃들은
다시 이 강변 어디에 이름도 모르는 조그만
풀잡맹이들로 피어났을까
피어나서 저렇듯 온몸으로 온몸으로 봄 강둑을
불태우고 있을까
돌아보면 저만치 사내의 뒷모습이 보이고
굽이치는 강물 줄기를 따라
자운영 꽃들만 숨가쁘게 빛나고
논둑에서 울다 ㅡ5월 / 이승희 |
쓸쓸한 봄날 / 박정만
길도 없는 길 위에 주저앉아서
노방路傍에 피는 꽃을 바라보노니
내 생의 한나절도 저와 같아라.
한창때는 나도
열병처럼 떠도는 꽃의 화염에 젖어
내 온몸을 다 적셨더니라.
피에 젖은 꽃향기에 코를 박고
내 한몸을 다 주었더니라.
때로 바람소리 밀리는 잔솔밭에서
청옥 같은 하늘도 보았더니라.
또한 잠 없는 한 사람의 머리맡에서
한밤내 좋은 꿈도 꾸었더니라.
햇볕이 아까운 가을 양지녘에서는
풍문처럼 떠도는 그리운 시를 읽고
어쩌다 찾아온 친구에게는
속절없는 내 사랑의 말씀도 전했더니라.
이제 날 저물고
팔이 짧아 내 품에 드는 것도
부피 없고 무게 없고 다 지친 것뿐.
가슴의 애도 제물에 삭고
밤의 괴로움도 제물에 축이 났어라.
이제 모질고 설운 날은 지나갔어라.
빈 집에 홀로 남은 옛날 아이는
따뜻한 오월의 어느 해 하루
툇마루를 적시는 산을 벗삼아
잔주름 풀어가는 강물을 본다.
5월의 시/이해인
풀잎은 풀잎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축복의 서정시를 쓰는 오월
하늘이 잘보이는 숲으로 가서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게 하십시오
피곤하고 산문적인 일상의 짐을 벗고
당신의 샘가에서 눈을 씻게 하십시오
물오른 수목처럼 싱싱한 사랑을
우리의 가슴속에 퍼올리게 하십시오
말을 아낀 기도속에 접어둔 기도가
한송이 장미로 피어나는 오월
호수에 잠긴 달처럼 고요이 앉아
불신했던 날들을 뉘우치게 하십시오
은총을 향해 깨어있는 지고한 믿음과
어머니의 생애처럼 겸허한 기도가
우리네 가슴속에 물 흐르게 하십시오
구김살 없는 햇빛이
아낌없이 축복을 쏟아내는 오월
어머니 우리가 빛을 보게 하십시오
욕심 때문에 잃었던 시력을 찾아
빛을 향해 눈뜨는 빛의 자녀가 되게 하십시오
오월이 돌아오면/ 신석정
오월이 돌아오면
내게서는 제법 식물 내음새가 난다
그대로 흙에다 내버리면
푸른 싹이 사지에서 금시 돋을 법도 하구나
오월이 돌아오면
제발 식물성으로 변질을 하여라
아무리 그늘이 음산하여도
모가지서부터 푸른 싹은 밝은 방향으로 햇볕을 찾으리라
오월이 돌아오면
혈맥은 그대로 푸른 엽맥이 되어라
심장에는 흥건한 엽록소를 지니고
하늘을 우러러 한 그루 푸른 나무로 하고 살자
5월이 오면/ 황금찬
언제부터 창 앞에 새가 와서
노래하고 있는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심산 숲내를 풍기며
5월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저 산의 꽃이 바람에 지고 있는 것을
나는 모르고
꽃잎 진 빈 가지에 사랑이 지는 것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오늘 날고 있는 제비가
작년의 그놈일까?
저 언덕에 작은 무덤은
누구의 무덤일까?
5월은 4월보다
정다운 달
병풍에 그려 있던 난초가
꽃피는 달
미루나무 잎이 바람에 흔들리듯
그렇게 사람을 사랑하고 싶은 달
5월이다.
오월/ 피천득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 한 살 나이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는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得了愛情痛苦 득료애정통고 - 얻었도다, 애정의 고통을
失了愛情痛苦 실료애정통고 - 버렸도다, 애정의 고통을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 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 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5월/ 김태인
저, 귀여운 햇살 보세요
애교떠는 강아지처럼
나뭇잎 핥고있네요
저, 엉뚱한 햇살 보세요
신명난 개구쟁이처럼
강물에서 미끄럼 타고있네요
저, 능청스런 햇살 보세요
토닥이며 잠재우는 엄마처럼
아이에게 자장가 불러주네요
저, 사랑스런 햇살 보세요
속살거리는 내 친구처럼
내 가슴에 불지르네요
5월의 느티나무/ 복효근
어느 비밀한 세상의 소식을 누설하는 중인가
더듬더듬 이 세상 첫 소감을 발음하는
연초록 저 연초록 입술들
아마도 지상의 빛깔은 아니어서
저 빛깔을 사랑이라 부르지 않는다면
초록의 그늘 아래
그 빛깔에 취해선 순한 짐승처럼 설레는 것을
어떻게 다 설명한다냐
바람은 살랑 일어서
햇살에 부신 푸른 발음기호들을
그리움으로 읽지 않는다면
내 아득히 스물로 돌아가
옆에 앉은 여자의 손을 은근히 쥐어보고 싶은
이 푸르른 두근거림을 무엇이라고 한다냐
정녕 이승의 빛깔은 아니게 피어나는
5월의 느티나무 초록에 젖어
어느 먼 시절의 가갸거겨를 다시 배우느니
어느새
중년의 아내도 새로 새로워져서
오늘은 첫날이겠네 첫날밤이겠네
5월을 드립니다/ 오광수
당신 가슴에
빨간 장미가 만발한 5월을 드립니다
5월엔
당신에게 좋은 일들이 생길 겁니다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왠지 모르게 좋은 느낌이 자꾸 듭니다
당신에게 좋은 일들이
많이 많이 생겨나서
예쁘고 고른 하얀 이를 드러내며
얼굴 가득히 맑은 웃음을 짓고 있는
당신 모습을 자주 보고 싶습니다
5월엔
당신에게 좋은 소식이 있을 겁니다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왠지 모르게 좋은 기분이 자꾸 듭니다
당신 가슴에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5월을 가득 드립니다
5월의 그대여/ 임영준
그대여
눈부신 햇살이 저 들판에
우르르 쏟아지고
계곡마다 초록선율 넘쳐흐르는데
아직도 그리움에 목말라
웅크리고만 있는가
때는 바야흐로
소박한 아카시아도 불붙는 날들인데
가시를 두른 장미도 별이 되는 날들인데
어이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는건가
5월 소식/ 정지용
오동나무 꽃으로 불밝힌 이곳 첫여름이 그립지 아니한가?
어린 나그내 꿈이 시시로 파랑새가 되여오려니
나무 밑으로 가나 책상 턱에 이마를 고일 때나
네가 남기고 간 기억만이 소근 소근거리는구나
모초롬만에 날러온 소식에 반가운 마음이 울렁거리여
가여운 글자마다 먼 황해가 남설거리나니
...나는 갈메기 같은 종선을 한창 치달리고 있다 ....
쾌활한 오월 넥타이가 내처 난데없는 순풍이 되여
하늘과 딱닿은 푸른 물결우에 솟은
외따른 섬 로만팈만을 찾어 갈가나
일본말과 아라비아 글씨를 아르키러간
쬐그만 이 페스탈로치야, 꾀꼬리 같은 선생님 이야,
날마다 밤마다 섬둘레가 근심스런 풍랑에 씹히는가 하노니
은은히 밀려 오는듯 머얼리 우는 오르간 소리 ...
5월의 축제/ 괴테
대자연은 나를 향해 얼마나 찬란히 빛나는가!
초원 또한 어쩌면 저렇게 찬란한가!
나뭇가지마다 꽃들이 피어나고
덤불 속에선 수없는 노랫소리 들리노니
모든 이의 가슴에선 기쁨과 희열이 솟아나도다
오, 대지여, 태양이여!
오, 행복이여, 환희여!
오, 사랑이여, 오, 사랑이여!
저 산 위의 아침
구름같이 금빛 찬란하구나
신선한 들판 위에
그대 장엄한 축복을 내리니...
이 충만한 세계는 꽃안개로 넘치도다!
오, 소녀여, 소녀여,
내 그대를 얼마나 사랑하는가!
그대 눈은 한없이 반짝이고 있으니,
그대 또한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가!
종달새는 이렇게
노래와 대기를 사랑하고
아침의 꽃들은
하늘의 향기를 사랑하노니,
나 역시 피 뜨겁게 그대를 사랑하노라
그대는 내게 젊음과 기쁨과 용기를 주어
새로운 노래와 춤을 추게 하도다
그대 나를 사랑하니 영원히 행복하거라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하이네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모든 꽃봉오리 벌어질 때
나의 마음속에서도
사랑의 꽃이 피었어라.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모든 새들 노래할 때
나의 불타는 마음을
사랑하는 이에게 고백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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