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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어머니, 나의 어머니- 고정희 본문
어머니, 나의 어머니
고정희
내가 내 자신에게 고개를 들 수 없을 때
나직이 불러본다 어머니
짓무른 외로움 돌아누우며
새벽에 불러본다 어머니
더운 피 서늘하게 거르시는 어머니
달빛보다 무심한 어머니
내가 내 자신을 다스릴 수 없을 때
북쪽 창문 열고 불러본다 어머니
동트는 아침마다 불러본다 어머니
아카시아 꽃잎 같은 어머니
이승의 마지막 깃발인 어머니
종말처럼 개벽처럼 손잡는 어머니
천지에 가득 달빛 흔들릴 때
황토 벌판 향해 불러본다 어머니
이 세계의 불행을 덮치시는 어머니
만고 만건곤 강물인 어머니
오 하느님을 낳으신 어머니
고정희 시인/ 1948년 해남에서 5남3녀의 장녀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통신교육으로 중고등과정을 마치고, 해남과 광주에서 잡지사 기자, 광주YWCA 청년, 대학생부 간사로 일하며, '흑조' 동인, 전남아동문학회 회원으로 시작 활동을 했다. 스물일곱 되던 1975년, 유신독재에 정면으로 대항하던 스승과 선배가 있던 한국신학대학(현재 '한신대학교')에 입학했다. 같은 해에 박남수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시학'을 통해 정식 등단한 이후 '목요시' 동인,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등을 지냈고, 1983년에는 장시집 '초혼제'로 대한민국문학상 신인상을 탔다. 고정희는 등단 이래 시력 16년 동안, 1979년 첫 시집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를 시작으로 '실락원기행'(1981), '초혼제'(1983), '이 시대의 아벨'(1983), '눈물꽃'(1986), '지리산의 봄'(1987),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1989), '광주의 눈물비'(1990), '여성해방출사표'(1990), '아름다운 사람 하나'(1991), 유고시집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1992) 등 주옥같은 시집 11권을 펴냈다. 시인은 시작 활동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실천에도 적극 앞장섰다. 1984년 대안문화 운동단체인 '또하나의문화' 창립에 참여해 적극적인 동인 활동과 함께 한국 여성 해방 문학의 지평을 넓히는 데 한몫을 담당했고, 여성들의 자발적인 출연으로 창간된 여성 정론지 '여성신문'의 초대 주간을 맡아 1년간 그 기틀을 다지는 데 기여했다. 1991년 6월 9일 그의 시의 모태가 되어 온 지리산 등반 중에 뱀사골에서 실족, 43세의 일기를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