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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함민복 시인 시모음 본문

아름다운 시편들/주제별 좋은시

함민복 시인 시모음

시낭송행복플러스 2014. 7. 2. 19:05

 

                                                                                                                     사진(세부)- 송설 작가님

 

 

고백

여름 장날에 빈혈로 쓰러져
남도 땅 친구 방에서 병원 다닐 때

닭 한 마리 사다가
잔털 뽑으며
물로 씻다가

살을 만지고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들어
죽은 닭의 살이지만
살을 만지고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들어

내가 만져 본 살도
나를 만져 준 살도

까마득
오래 되어

죄스럽게
죄스럽게

배 눌러보는 여의사 님의 손끝을
아픈 배로 숨으로 그윽이 만져 보았습니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서
담장을 보았다
집 안과 밖의 경계인 담장에
화분이 있고
꽃의 전생과 내생 사이에 국화가 피었다

저 꽃은 왜 흙의 공중섬에 피어 있을까

해안가 철책에 초병의 귀로 매달린 돌처럼
도둑의 침입을 경보하기 위한 장치인지
내 것과 내 것 아님의 경계를 나눈 자가
행인들에게 시위하는 완곡한 깃발인가
집의 안과 밖이 꽃의 향기를 흠향하려
건배하는 순간인가

눈물이 메말라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지 못하는 날
꽃철책이 시들고
나와 세계의 모든 경계가 무너지리라

 

  

 

긍정적인 밥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어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양팔저울/ 함민복 

 

              1

나는 나를 보태기도 하고 덜기도 하며

당신을 읽어 나아갑니다


나는 당신을 통해 나를 읽을 수 있기를 기다리며

당신 쪽으로 기울었다가 내 쪽으로 기울기도 합니다


상대를 향한 집중, 끝에, 평형

실제 든 짐은 없으나 서로 짐 덜어 가벼워지는

 

 

2

입과 항문

구멍 뚫린

접시 두 개

사이

먼 길

누구나

파란만장

거기

우리

수평의 깊이

 

 

동막리 바다로 가는 길


바다로 내린 마니산 자락에 포구로 가는 길이 있네
길이 끝나는 산모통이에 상여보다 작은 곳집이 있고
바다로 가려면 그 길을 지나야 하네

사람들은 제방을 쌓고 그 너머를 바다라고 부르네
가끔 제방이 터지기도 하네

달맞이꽃 피어나는 제방길을 사이에 두고
산 사람은 배를 타고 바다로 가고
죽은 사람은 상여를 타고 산으로 가네

밀물과 썰물을 타고 오가는 망둥이여
육지도 바다도 아닌 뻘밭의 세월이여
두 개의 포구가 있는 길이여

 

 

호 박                                             

 


호박 한 덩이 머리맡에 두고 바라다보면

방은 추워도 마음은 따뜻하네

최선을 다해 딴딴해진 호박

속 가득 차 있을 씨앗

가족사진 한장 찍어 본 적 없는 나(我)라

소박네 마을 벌소리 붕붕

후드득 빗소리 들려

품으로 호박을 꼬옥 안아 본 밤

호박은 방안 가득 넝쿨을 뻗고

코끼리 귀만한 잎사귀 꺼끌꺼끌

호박 한 덩이 속에 든 호박들

그새 한 마을 이루더니


봄이라고 호박이 썩네

흰곰팡이 피우며

최선을 다해 물컹쿨컹 썩어 들어가네

비도 내려 흙내 그리워 못 견디겠다고

썩는 내로 먼저 문을 열고 걸어나가네

 

  

 

빨래집게                                         

 


옷을 집고 있지 않을 때

내 몸을 매달아본다

몸뚱이가 되어 허공을 입고

허공을 걷던 옷가지들

떨어지던 물방울의 시간

입아귀 근력이 떨어진

입 다무는 일이 일생인

나를 물고 있는 허공

물 수 없는

시간을 깨물다

철사 근육이 삭아 끊어지면

툭, 그 한마디 내지르고

훑어지고 말

온몸이 입인


 


선천성 그리움                                          
 

 

사람 그리워 당신을 품에 안았더니

당신의 심장은 나의 오른쪽 가슴에서 뛰고

끝내 심장을 포갤 수 없는

우리 선천성 그리움이여

하늘과 땅 사이를

날아오르는 새떼여

내리치는 번개여


  

 

샐러리맨 예찬                                   

 


쥐가 꼬리로 계란을 끌고 갑니다 쥐가 꼬리로 병 속에 든 들기름을 빨아먹습니다 쥐가 꼬리로 유격 훈련처럼 전깃줄에 매달려 횡단합니다 쥐가 꼬리의 탄력으로 점프하여 선반에 뛰어 오릅니다 쥐가 꼬리로 해안가 조개에 물려 아픔을 끌고 산에 올라가 조갯살을 먹습니다 쥐가 물동이에 빠져 수영할 힘이 떨어지면 꼬리로 바닥을 짚고 견딥니다 30분 60분 90분 - 쥐독합니다 그래서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살아가는 삶은 눈동자가 산초 열매처럼 까맣고 슬프게 빛납니다
  

  

 

오래된 잠버릇                                          

파리는 내가 덮고 자는 공간을 깔고 잔다

날개 휘젓던 공간밖에 믿을게 없어

날개의 길밖에 믿을 게 없어

천장에 매달려 잠자는 파리는 슬프다

추락하다 잠이 깨면 곧 비행할 포즈

헬리콥터처럼 활주로 없이 이착륙하는 파리

구더기를 본 사람은 알리라

왜 파리가 높은 곳에서 잠드는가를

 

저 사내는 내가 덮고 자는 공간을 깔고 잔다

지구의 밑 부분에 집이 매달리는 시간

나는 바닥에 엎드려 자는데

저 사내는 천장에 등을 붙이고 잔다

발 붙이고 사는 땅밖에 믿을 게 없다는 듯

중력밖에 믿을 게 없다는 듯

천장에 등을 붙이고 잠드는 저 사내는 슬프다

어떤 날은 저 사내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늦게 거꾸로 쭈그려 앉아 전화를 걸기도 한다

저 사내처럼 외로운 사람이 어디 또 있나 보다

 

  

 

  만찬(晩餐)                                       


혼자 사는 게 안쓰럽다고


반찬이 강을 건너왔네

당신 마음이 그릇이 되어

햇살처럼 강을 건너왔네


김치보다 먼저 익은

당신 마음

한 상


마음이 마음을 먹는 저녁

 

  

 

달의 눈물                                                                 

금호동 산동네의 밤이 깊다 

고단한 하루를 마친 사람들이 

노루들의 잠자리나 되었을 법한 

산속으로 머리를 눕히러 찾아드는 곳 

힘들여 올라왔던 길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몸 더럽히고 

흘러내리는 하수도 물소리 
        
숨찬 산중턱에 살고 있는 나보다 

더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 많아 

아직 잠 못 이룬 사람들 많아 

하수도 물소리 

골목길 따라 흘러내린다 
        
전봇대 굵기만한 도랑을 덮은 

쇠철망 틈새로 들려오는 

하수도 물소리 

누가 때늦은 목욕을 했는지 

제법 소리가 커지기도 하며 
        
산동네의 삶처럼 경사가 져 

썩은내 풍길 새도 없이 흘러내리는 

하수도 물소리 
        

또 비린내가 좀 나면 어떠랴 

그게 사람 살아가는 증표일진대 

이곳 삶의 동맥처럼 

새벽까지 끊기지 않고 

흐르는 

하수도 물소리 

물소리 듣는 것은 즐겁다 
        

쇠철망 앞에 쭈그려 앉아 담배를 물면 

달의 눈물 

하수도 물소리에 가슴이 젖는다

 

 

  

그날 나는 슬픔도 배불렀다                         


아래층에서 물 틀면 단수가 되는

좁은 계단을 올라야 하는 전세방에서

만학을 하는 나의 등록금을 위해

사글세방으로 이사를 떠나는 형님네

달그락거리던 밥그릇들

베니어판으로 된 농짝을 리어커로 나르고

집안 형편을 적나라하게 까보이던 이삿집

가슴이 한참 덜컹거리고 이사가 끝났다.

형은 시장 골목에서 짜장면을 시켜주고

쉽게 정리될 살림살이를 정리하러 갔다.

나는 전날 친구들과 깡소주를 마신 대가로

냉수 한 대접으로 조갈증을 풀면서

짜장면을 앞에 놓고

이상한 중국집 젊은 부부를 보았다.

바쁜 점심시간 맞춰 잠 자주는 아기를 고마워하며

젊은 부부는 밀가루, 그 연약한 반죽으로

튼튼한 미래를 꿈꾸듯 명랑하게 전화를 받고

서둘러 배달을 나아갔다

나는 그 모습이 눈물처럼 아름다워

물배가 부른데도 짜장면을 남기기 미안하여

마지막 면발까지 다 먹고나니

더부룩하게 배가 불렀다, 살아간다는 게

그날 나는 분명 슬픔도 배불렀다 

 

  

 

라면을 먹는 아침                                       


프로 가난자인 거지 앞에서

나의 가난을 자랑하기엔

나의 가난이 너무 가난하지만

신문지를 쫙 펼쳐놓고

더 많은 국물을 위해 소금을 풀어

라면을 먹는 아침

반찬이 노란 단무지 하나인 것 같지만

나의 식탁은 풍성하다

두루치기 일색인 정치면의 양념으로

팔팔 끓인 스포츠면 찌개에

밑반찬으로

씀바귀 맛 나는 상계동 철거 주민들의

눈물로 즉석 동치미를 담그면

매운 고추가 동동 뜬다 거기다가

똥누고 나니까 날아갈 것 같다는

변비약 아락실 아침 광고하는 여자의

젓가락처럼 쫙 벌린 허벅지를

자린고비로 쳐다보기까지 하면

나의 반찬은 너무 풍성해

신문지을 깔고 라면을 먹는 아침이면

매일 상다리가 부러진다.

 

 

 

       그림자

 

금방 시드는 꽃 그림자만이라도 색깔 있었으면 좋겠다
어머니 허리 휜 그림자 우두둑 펼쳐졌으면 좋겠다
찬 육교에 엎드린 걸인의 그림자 따뜻했으면 좋겠다
마음엔 평평한 세상이 와 그림자 없었으면 좋겠다


 

 

부부

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한 발
또 한 발

 

 

 

나를 위로하며

삐뚤삐뚤
날면서도
꽃송이 찾아 앉는
나비를 보아라

마음아

 

 



당신 품에 안겼다가 떠나갑니다
진달래꽃 술렁술렁 배웅합니다
앞서 흐르는 물소리로 길을 열며
사람들 마을로 돌아갑니다
살아가면서
늙어가면서
삶에 지치면 먼발치로 당신을 바라다보고
그래도 그리우면 당신 찾아가 품에 안겨보지요
그렇게 살다가 영, 당신을 볼 수 없게 되는 날
당신 품에 안겨 당신이 될 수 있겠지요

 

 

 

     자석

 

꽃들은 자석인가 봐요

나를 끌어당겨요

 

꽃에게 끌리는 것 보면

나는 꽃과 다른 극인가 봐요

 

고운 빛깔 만져보고

향긋한 향기 맡다 보면

나도 조금은 꽃과 같은 극이 되는지

꽃 떠날 때 마음이 밝아져요

 

 

 

         눈물은 왜 짠가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 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 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국물을 그만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히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 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만 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시인/ 1962년 충북 중원군 노은면에서 태어났다.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월성 원자력발전소에서 4년간 근무했다. 이후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입학한다. 그리고 예술대학 2학년 때인 1988년에 「성선설」 등을 《세계의 문학》에 발표하며 등단했다. 1996년 우연히 놀러갔던 마니산이 너무 좋아 인근 폐가를 빌려 그곳에 정착하게 된다. 강화에 장착한 이후 시집 《말랑말랑한 힘》과 에세이집 《미안한 마음》,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를 펴냈다. 강화에 머물면서 김수영 문학상, 윤동주상 등의 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