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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풍경의 깊이- 김사인

시낭송행복플러스 2015. 2. 6. 23:38

풍경의 깊이

김사인


바람 불고
키 낮은 풀들 파르르 떠는데
눈여겨보는 이 아무도 없다.

그 가녀린 것들의 생의 한순간의
외로운 떨림들로 해서
우주의 저녁 한때가 비로소 저물어간다.


그 떨림의 이쪽에서 저쪽 사이,
그 순간의 처음과 끝 사이에는 무한히

늙은 옛날의 고요가,
아니면 아직 오지 않은 어느 시간에 속할 어린 고요가

보일 듯 말 듯 옅게 묻어 있는 것이며,
그 나른한 고요의 봄볕 속에서

나는 백년이나 이백년쯤
아니라면 석달 열흘쯤이라도 곤히 잠들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 석달이며 열흘이며 하는 이름만큼의
내 무한 곁으로 나비나 벌이나 별로
고울 것 없는 버러지들이 무심히 스쳐가기도 할 것인데,


그 적에 나는 꿈결엔 듯 그 작은 목숨들의 더듬이나 날개나
앳된 다리에 실려온 낯익은 냄새가 어느 생에선가
한결 깊어진 그대의 눈빛의 눈빛인 걸
알아보게 되리라 생각한다.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2006 창비)

 

 

김사인 시인/ 1956년 대한민국 충북 보은에서 태어나, 1982년 ‘시와 경제’에 동인으로 참가하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1974년에 서울대 국문학과에 입학한 김사인은 《대학신문》에 〈戀詩를 위한 이미지 연습〉(1976. 3. 29), 〈밤 지내기〉(1976. 9. 27) 등의 시를 발표한 청년 문사였다. 대학의 학생 시위가 계속되던 1970년대 후반인 1977년 11월 18일 ‘서울대 반정부 유인물 배포 미수 사건’에 연루되어 74학번 동기들과 함께 구속되면서 그의 고초는 시작되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서 그는 시인으로, 평론가로 등단하고 민중문학 진영의 이론가로 활동하며, 1982년 《한국문학의 현단계》에 평론 〈지금 이곳에서의 시〉를 발표했다. 1987년 이후에는 노동문학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조정환, 박노해와 더불어 1989년 3월에 ‘노동해방문학’을 창간하고 발행인이 되었다. 1987년 10월에 첫 시집 《밤에 쓰는 편지》(도서출판 청사)를 펴냈으며, 후기에 ‘심약과 우유부단함’과‘노동과 사랑’이라는 자신의 성격과 시의 지향점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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