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가을 숲의 보시- 도종환 본문

아름다운 시편들/명수필. 좋은수필

가을 숲의 보시- 도종환

시낭송행복플러스 2015. 3. 15. 11:48

 

 

가을 숲의 보시/ 도종환

 


뒷산을 둘러보고 내려오는데
산발치와 밭두둑에 멧돼지가 주둥이로 파헤친 자국이
여기저기 나 있어 이상하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고구마 밭을 몽땅 뒤집어 놓았다.

고구마란 고구마는 다 먹어치우고
잔챙이 몇 개만 남겨 놓았다.

크고 작은 발자국을 보니 여러 마리가 몰려와서
포식을 하고 간 것 같다.

멧돼지는 새끼들까지 다 데리고 몰려다니니
우리 밭에도 멧돼지 식구 전체가 함께 다녀갔으리라.

어떤 녀석은 드러누워
등을 풀밭언덕에 문지르며 놀다간 것 같다.
풀들이 많이 이지러져 있다.
이래저래 올해 가을에는 거두어드릴 것이 별로 없다.

손가락 두세 개 정도 크기의 고구마
대여섯 개 주워들고 밭을 내려왔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불태우고 서 있는 나무들로 인해
산은 홍엽으로 가득 물들었다.

“버려야 할 것이 /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 제 삶의 이유였던 것 /
제 몸의 전부였던 것 /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는 시를 쓴 적이 있다.

「단풍드는 날」이란 시이다.

단풍으로 몸을 바꾸어야겠다고 나무가 판단하는 순간은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순간이다.

아침저녁으로 살갗에 다가오는 기온이
점점 차가워지고 있는 걸 느낄 때,
낮아진 밤 기온을 나뭇잎이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을 보았을 때
나무는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했을 것이다.

밤을 새우고 난 나뭇잎이
새파래진 입술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나무는 이제 무엇이 이 숲에 찾아올 것인지를 안다.

나뭇잎은 포근한 봄날과, 햇빛, 바람,
수분 이 모든 것이 풍요롭기만 하던 여름만을 겪어보았지만
나무는 수십 번의 겨울을 겪어보았기 때문이다.

나무는 무너지는 푸른 빛을 거두어드리며
붉은 빛을 꺼내놓는다.
이것도 나뭇잎 안에 가지고 있던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생명체가 그러하듯이 나뭇잎 안에도
정과 동, 강렬함과 온유함, 열정과 냉정, 평온한 빛과
치열한 자기 색깔이 함께 들어 있는 것이다.

푸른 빛을 붉은 빛이나 노란 빛으로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푸른 빛이 무너지자 붉은 빛을 내놓는 것이다.
이미 나뭇잎 안에 붉은 빛이 준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푸른 빛이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무수히 쓰러지는 날이거나
밤바람이 차가운 날일수록
더욱 선명하게 붉은 색을 밖으로 내보낸다.

계곡이나 물가에 서 있어서
새벽이면 더욱 싸늘해진 물줄기 때문에 무척 힘들어하면
물푸레나무는 그 해의 가장 빛나는 붉은 빛을 몸 밖으로 내보낸다.

그래서 계곡 옆에서 자라는 나무들의 단풍이
더욱 붉게 빛나는 것이다.

그렇게 타오른 순간 순간 나무는 자기 생의 절정에 선다.
꽃보다 더 아름답게 불타며 천천히 자기가 가장 아끼던 것,
제 몸의 일부였던 것들을 지상에 내려놓는다.

나뭇잎들도 단풍이 든다는 것이
자기 생의 무엇인지를 천천히 깨달으며
제 몸에 남아 있던 생명들을 나무줄기로 돌려보낸다.

나무도 그렇게 소멸에 대한 자기 준비를 한다.

그러고도 남은 것이 있으면 나뭇잎은 그것을 벌레에게 주고
그래도 남아 있는 몸이 있으면 다른 몸들과 합쳐
숲의 이불이 되기도 하고 방호벽이나 양탄자가 되기도 하다가
잘게 잘게 제 몸을 쪼개 나무의 양식으로 돌려보낸다.

그것이 제가 다시 나무의 생명으로 윤회하며
되살아나는 길임을 나뭇잎도 안다.

열매들을 보라.

나무가 한 해 동안 가장 심혈을 기울여 이룩한 결실.
자기 생을 다시 이어줄 빛나는 생명의 결정체를
어떻게 마무리하는 가를 보라.

감나무의 감이 만추까지 오게 하기 위해
나무는 얼마나 많은 날을 참고 견뎌냈는가.

아직 어린 열매일 때는 새나 사람이 먹으려 해보았자
떫고 비려 먹을 수 없게 만들어서 열매를 지켰고

도토리나 호두는 과육이 딱딱하여
부리가 잘 들어가지 못하게 해 놓고는 열매를 지켰으며
밤은 가시로 알을 싸서 보호하고 지켰다.

나무들은 그것들을 가을까지 자라게 하느라
얼마나 노심초사 하였겠는가.
온갖 방법과 지혜와 무기를 동원하여 열매를 지켰다.
그 열매들이 온전하게 성숙할 때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지키고 키워낸 뒤
이제 그것들을 숲에 되돌려주는 모습이 아름답다.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키운 결실과
자기 자신이기도 한 그것들을 허락하는 나무의 자세를 보라.

산수유는 얼마나 알알이 곱게 다듬은 자신을
숲에 내어 놓고 있는가.

감나무는 딱딱하던 육질을 한없이 부드러운 몸으로 바꾸고
떫은맛을 단맛으로 바꾸어 까치와 새들에게 내어놓았다.

독한 냄새를 향기로 바꾸고
푸르고 설익어 보이던 빛깔을 붉고 고운 빛깔로 갈무리하였다.

밤나무는 가시를 열어 제치고 열매를 활짝 드러내어
작은 짐승들에게 나누어 준다.

신갈나무 상수리나무는 도토리 열매를 숲 가득 내려놓는다.

크고 작은 짐승들이 실컷 먹고 저마다 가져다가
제 굴 어딘가에 쌓아놓도록 허락한다.
그것이 제가 영원히 사는 길임을 나무들은 안다.

상수리나무는 제 열매를 제 손으로 땅에 심을 수 없다.
그러나 다람쥐들이 여기저기 물어다 쌓도록 허락하면
자연스럽게 땅 속에 씨앗을 심을 수 있게 된다.

너무 많은 열매를 굴이나 땅속에 묻어두는 바람에
열 무더기를 물어다 파묻으면
그 중 한 무더기쯤은 잊어버리게 된다.

거기서 새순이 움트고 상수리나무 싹이 돋아나는 것이다.
그게 주면서 다시 생명을 얻는 길임을 나무는 안다.
밤나무도 그렇고 호두나무도 그걸 안다.

새들이 먹기 좋은 향내와 빛깔로
제 몸을 바꾸어 놓은 열매들은
어두운 창자와 뱃속을 지나 더러운 냄새와 찌꺼기에 섞여
배설물과 함께 낯선 곳에 버려지지만
바로 그 배설물을 거름으로 삼아 싹을 틔우는 것이다.

많은 나무들이 붉은 빛깔로 곱게 가꾼 열매들을
새들에게 내주는 것은 빼앗기는 것이 아니다.

주는 것이 다시 사는 길임을
자연과 인간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제가 가꾼 것을 움켜쥐고 절대 내놓으려 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넘치는 결실이 있으면
창고를 어떻게 더 크게 지을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인간의 셈법이다.

나누는 것보다 더 풍요로운 삶은 없다는 것을
식물도 동물도 본능적으로 아는데 인간은 그렇지 않다.

쌓아놓기만 하려는 삶은
그래서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삶이 아니다.

모든 것을 경제적이 가치로 바꾸어 버리고
경제적인 논리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자연의 순리를 따라 사는 삶이 아니다.

단풍든 나뭇잎이 바람에 몸을 씻으며 내는 소리는
그걸 알아들으라는 자연의 음성이다.

고구마가 멧돼지 일가족에게 자신을 허락한 걸 보면
나보다 그들에게 몸을 주는 것이
더 나은 일이라고 생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인 나는 고구마가 아니더라고 먹을 것이 있지만
산과 들에 먹을 만한 양식이 거의 다 떨어져 가는 늦가을에
그나마 제 몸이라도 허락하여
허기를 면하게 하게 하는 것이
더 나은 공생의 길이라고 생각한 건지도 모르겠다.

텃밭 바로 아래 사는 내게는 다가오지 않던 단맛을
산속에 사는 멧돼지들은 느낄 수 있도록
밤마다 흘려 놓은 것을 보아도
이건 고구마의 계산된 행동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멧돼지와 고구마의 야합을
묵인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아름다운 시편들 > 명수필. 좋은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별사탕/ 최이해  (0) 2016.10.12
참 좋은 풍경/ 이정록   (0) 2015.04.29
산책 - 맹난자  (0) 2014.10.06
삶이란 무엇인가/ 안도현  (0) 2014.09.21
명태에 관한 추억- 목성균  (0) 2014.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