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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풍경/ 이정록 본문
참 좋은 풍경/ 이정록
나는 주저리주저리 어려운 말로 써있는 여행지 안내판을 읽지 않는 편이다. 읽어도 무슨 보탬이 되는 것도 아니고 내 무지만 거울처럼 들여다보는 꼴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한글로 써있는 안내판의 절반도 한자어가 대부분인 것이, 이 곳은 깊은 지식과 심미안이 없으면 보나마나라고 겁주는 듯하기 때문이다. 연대기정도 보는 게 고작이다. 지나간 시간의 두께는 그것만으로도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머지 반쪽은 영문으로 써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외국인을 위한 조그만 안내책자를 만들면 돈도 벌고 자존심도 상하지 않을 것을! 그러므로 나는 나에게 걸어 들어오는 풍경과 느낌을 천천히 읽고 들이마실 뿐이다. 이런 얇은 여행 중에도 나는 좋은 풍경을 만날 때가 많다.
어느 절이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그만큼 나는 아름다운 절과 푸른 들판을 차별을 두어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어느 마을의 무슨 들녘인지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꼴이다. 감동과 설렘이 있는 곳에 내가 있으면 그게 여행이고 산책이다. 그러니 거기에 국보가 있으면 어떻고 보물이 몇 점 있으면 뭐하겠는가? 그저 입장료가 싸고 약수가 맛있고 자판기 커피가 맹물만 아니라면 나에게는 웬만한 절인 것이다. 풍경소리와 목탁소리 없는 절이 있는가? 덤으로 좋은 산자락과 깊은 계곡 물소리까지 곁들여주면 그저 관세음보살일 뿐이다.
절 마당에 들어서니 빗자루가 지나간 결이 아름다웠다. 그런데 너른 마당 한 복판에 기왓장 깨진 것이 소복이 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치우려면 저 기왓장 깨진 것도 좀 치울 것이지. 저곳에 몽땅 모아 논 것은 무슨 심보람.'
투덜거리며 대웅전 앞으로 가다보니 소복하게 쌓여있는 기왓장 안에 개미들이 분주하게 집을 짓고 있었다. 땅속에서 근로기준법과 육아출산에 관한 관계법을 개정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 아름다운 사람의 마음과 감동적인 광경이여. 나는 마음이 두근거리며 숨이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 이게 금강경이지. 마음속에 사진 한 장 찰칵! 개미집과 그 개미집을 두르고 있는 조그만 담장이 주인공이 되고 대웅전은 계단 한 칸과 처마 그림자만이 사진 안에 기웃이 담겼다.
그리고 마당 곁엔 대숲이 있었다. 대숲 울타리 안쪽에 선방이 있는 듯 했다. 거기 작은 울타리에는 "새들의 산란기이니 조용히 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정숙"도 아니고 "돌아가시오"도 아니었다. 도량이니 어찌어찌 하라는 명령도 거기에는 없었다. 나의 공부 때문이 아니고 어미 새와 솜털 보송보송한 새 새끼 때문이라고. 여기에서도 아주 조용하게 내 마음의 필름 속에, 찰칵! 요번에는 대나무의 푸른 이파리와 새소리가 가슴 깊은 곳으로 흘러들었다.
여행에서 이 정도를 얻으면 된다 싶다. 아니 과분하다. 떠나기 전의 설렘이 있었으니 남아도 한참은 남는 것이다. 역사, 문화, 지리, 등등의 지식은 방안에서도 다 찾아볼 수 있다. 그 날 그 개미집이 사람들의 등산화에 짓밟히지 않도록 깨진 기왓장을 쌓아놓고 도량에 들어간 스님들은 대체 무슨 공부를 더 한다는 것인가? 새들의 산란기라서 문도 함부로 열지 못하고 제때에 해우소도 다니지 못했을 텐데 말이다. 목탁소리나 풍경소리는 참 좋은 음악이라서, 새들은 그것만으로도 온 숲이 부화장인양 둥우리 틀고 앉아 알을 품을 것인데. 짧은 봄 내내 등허리 벗겨지는 줄도 모를 텐데 말이다. 아니 이 웬 망발! 가벼운 여행이 즐겁다.
이정록 시인/1964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1989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와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로 등단했다. 2001년 김수영문학상, 2002년 김달진문학상, 2013년 제8회 윤동주 문학 대상을 수상했다. 주요 도서로 시집 『정말』 『의자』 『제비꽃 여인숙』 『풋사과의 주름살』 『벌레의 집은 아늑하다』, 동화책 『귀신골 송사리』 『십 원짜리 똥탑』, 동시집 『콧구멍만 바쁘다』 등이 있다. 지금은 시와 동화, 동시를 쓰고 있다. 특히 어린이 마음을 커다랗게 키우는 이야기를 짓고자 한다
나는 주저리주저리 어려운 말로 써있는 여행지 안내판을 읽지 않는 편이다. 읽어도 무슨 보탬이 되는 것도 아니고 내 무지만 거울처럼 들여다보는 꼴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한글로 써있는 안내판의 절반도 한자어가 대부분인 것이, 이 곳은 깊은 지식과 심미안이 없으면 보나마나라고 겁주는 듯하기 때문이다. 연대기정도 보는 게 고작이다. 지나간 시간의 두께는 그것만으로도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머지 반쪽은 영문으로 써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외국인을 위한 조그만 안내책자를 만들면 돈도 벌고 자존심도 상하지 않을 것을! 그러므로 나는 나에게 걸어 들어오는 풍경과 느낌을 천천히 읽고 들이마실 뿐이다. 이런 얇은 여행 중에도 나는 좋은 풍경을 만날 때가 많다.
어느 절이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그만큼 나는 아름다운 절과 푸른 들판을 차별을 두어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어느 마을의 무슨 들녘인지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꼴이다. 감동과 설렘이 있는 곳에 내가 있으면 그게 여행이고 산책이다. 그러니 거기에 국보가 있으면 어떻고 보물이 몇 점 있으면 뭐하겠는가? 그저 입장료가 싸고 약수가 맛있고 자판기 커피가 맹물만 아니라면 나에게는 웬만한 절인 것이다. 풍경소리와 목탁소리 없는 절이 있는가? 덤으로 좋은 산자락과 깊은 계곡 물소리까지 곁들여주면 그저 관세음보살일 뿐이다.
절 마당에 들어서니 빗자루가 지나간 결이 아름다웠다. 그런데 너른 마당 한 복판에 기왓장 깨진 것이 소복이 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치우려면 저 기왓장 깨진 것도 좀 치울 것이지. 저곳에 몽땅 모아 논 것은 무슨 심보람.'
투덜거리며 대웅전 앞으로 가다보니 소복하게 쌓여있는 기왓장 안에 개미들이 분주하게 집을 짓고 있었다. 땅속에서 근로기준법과 육아출산에 관한 관계법을 개정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 아름다운 사람의 마음과 감동적인 광경이여. 나는 마음이 두근거리며 숨이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 이게 금강경이지. 마음속에 사진 한 장 찰칵! 개미집과 그 개미집을 두르고 있는 조그만 담장이 주인공이 되고 대웅전은 계단 한 칸과 처마 그림자만이 사진 안에 기웃이 담겼다.
그리고 마당 곁엔 대숲이 있었다. 대숲 울타리 안쪽에 선방이 있는 듯 했다. 거기 작은 울타리에는 "새들의 산란기이니 조용히 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정숙"도 아니고 "돌아가시오"도 아니었다. 도량이니 어찌어찌 하라는 명령도 거기에는 없었다. 나의 공부 때문이 아니고 어미 새와 솜털 보송보송한 새 새끼 때문이라고. 여기에서도 아주 조용하게 내 마음의 필름 속에, 찰칵! 요번에는 대나무의 푸른 이파리와 새소리가 가슴 깊은 곳으로 흘러들었다.
여행에서 이 정도를 얻으면 된다 싶다. 아니 과분하다. 떠나기 전의 설렘이 있었으니 남아도 한참은 남는 것이다. 역사, 문화, 지리, 등등의 지식은 방안에서도 다 찾아볼 수 있다. 그 날 그 개미집이 사람들의 등산화에 짓밟히지 않도록 깨진 기왓장을 쌓아놓고 도량에 들어간 스님들은 대체 무슨 공부를 더 한다는 것인가? 새들의 산란기라서 문도 함부로 열지 못하고 제때에 해우소도 다니지 못했을 텐데 말이다. 목탁소리나 풍경소리는 참 좋은 음악이라서, 새들은 그것만으로도 온 숲이 부화장인양 둥우리 틀고 앉아 알을 품을 것인데. 짧은 봄 내내 등허리 벗겨지는 줄도 모를 텐데 말이다. 아니 이 웬 망발! 가벼운 여행이 즐겁다.
이정록 시인/1964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1989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와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로 등단했다. 2001년 김수영문학상, 2002년 김달진문학상, 2013년 제8회 윤동주 문학 대상을 수상했다. 주요 도서로 시집 『정말』 『의자』 『제비꽃 여인숙』 『풋사과의 주름살』 『벌레의 집은 아늑하다』, 동화책 『귀신골 송사리』 『십 원짜리 똥탑』, 동시집 『콧구멍만 바쁘다』 등이 있다. 지금은 시와 동화, 동시를 쓰고 있다. 특히 어린이 마음을 커다랗게 키우는 이야기를 짓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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