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배
오탁번
지하철을 타면 나도 장님이 된다
눈감고 서서 자는 시늉하면
물살 가르며 내닫는 배를 탄 것 같다
등 푸른 물고기 지느러미 같은
땀 냄새나는 승객들 사이에서
뱃멀미하던
울릉도 가던 밤배 생각난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 눈을 감고
하모니카 부는 장님이
저승의 기슭에 배를 대듯
지하철을 밀면서 걸어가는 소리를 듣는다
장님의 생애를 실은 배는
돛도 닻도 다 망가져서
바닷물 따라 뒤뚱거리고 있다
장님도 나의 생애를 싣고 가는
밤배의 고동소리 들을 것이다
암초가 있는 줄도 모르고
암흑의 바다를 향해하는
나의 밤배는
이물도 고물도 다 망가져서
바닷물 뱃전에 넘치고 있다
- (오세영의 『시 쓰기의 발견』, 서정시학 2013)
오탁번/ 1943년 7월 3일 제천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 국문학과에서 석사, 박사를 받았다. 196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철이와 아버지'가 당선되고 이듬해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純銀이 빛나는 이 아침에'가 당선된 후 1969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處刑의 땅'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 《아침의 豫言》 《너무 많은 가운데 하나》 《생각나지 않는 꿈》 《겨울강》 《1미터의 사랑》 《벙어리장갑》 《손님》과 소설집 《處刑의 땅》 《내가 만난 女神 》 《절망과 기교》 《저녁연기》 《새와 十字架》 《혼례》 《겨울의 꿈은 날 줄 모른다》 《純銀의 아침》이 있으며 시론집 《現代文學 散藁》 《韓國 現代詩史의 對位的 構造》 《현대시의 이해》 《오탁번 詩話》가 있다. 육군사관학교 교수부 국어과와 수도여자사범대학 국문학과를 거쳐 1978년 8월 31일부터 2008년 8월 31일까지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