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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2013년 10월 2일 오전 08:14 본문

아름다운 시편들/명시. 좋은시

2013년 10월 2일 오전 08:14

시낭송행복플러스 2013. 10. 2. 08:15

모녀
김기택


딸의 얼굴이 조금 들어가 있는 엄마가
소곤소곤 뭐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딸이 엄마의 웃음을 똑같이 그리며 웃고 있다.
두 웃음이 하나의 얼굴에서 웃는다.
엄마가 나직나직 이야기할 때
두 얼굴은 모두 엄마가 되었다가
딸이 생글생글 이야기하면
두 얼굴은 금방 명랑한 딸의 얼굴이 되곤 한다.
두 몸에서 나온 하나의 얼굴
두 얼굴에 맞붙어 있는 한 눈, 한 웃음.
한 웃음 속의 두 입, 두 웃음소리.
서로 단단하게 붙어있는, 둘로 갈라져버리면
바로 피가 날 것 같은 하나의 얼굴.
한 입으로 이야기하고
한 고개로 끄덕이는 두 얼굴.
엄마의 웃음 속에 있는 딸이 이야기하자
딸 속의 엄마가 무릎을 치며 맞장구친다.
딸의 웃음 속에 들어있는 엄마가 이야기하자
엄마 속의 딸이 까르르 웃는다.
한참 이야기를 듣던 엄마는
저도 모르게 40대의 딸이 되어서는
응, 응? 응, 고개를 끄덕이며 어린 대답을 한다.
딸 속의 엄마는 엄마 속의 딸을 대견하게 바라보며
인자한 웃음을 보낸다.
슬픔이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도록 명랑한
둘로 갈라진 자국이 없는
하나의 눈, 하나의 코, 하나의 얼굴.
조마조마하도록 가만히 소곤거리는,
하나가 없어진다면
둘 다 영원히 없어져버리고 말 것 같은
10대 엄마와 40대 딸.


-시집 (『갈라진다 갈라진다』문학과지성사 )


김기택/1957년 경기도 안양에서 태어났다.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나왔으며 시집 [태아의 잠]
[바늘구멍 속의 폭풍] [사무원] [소] [껌] 들을 펴냈다. 어린이를 위한 책으로 [꼬부랑 꼬부랑 할머니] [방귀]를
썼으며, 외국 동화 [용감무쌍 염소 삼형제]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고양이 폭풍] 들을 한국어로 옮겼다.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수문학상, 미당문학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