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방앗간이 사라지지 않게 해주세요
김선우
차가운 무쇠 가래떡기계에서
뜻밖의 선물같은 김 오르는 따뜻한 살집같은 다정한 언니의
영원한 발목같은 뜨거운 그리운 육두문자 같은 배를 만져 주던 할머니의
흰 그림자 같은 눈물의 모음 같은 너에게 연결되고 싶은 쫄깃한 꿈결 같은
졸음에 겨운 양 눈속에 부드럽게 흰 느린 길 같은 노크하자 기다랗게 뽑아져
나오는 잃어버린 시간 같은
가래떡이 나오네
차갑고 딱딱한 무쇠 기계에서 나오는 것이 긴 칼이나 총알이 아니라
이렇게 말랑고소한 떡이라는 게 별안간 고마워서 두 손에 덥석 받아들고 아,아,
목청 가다듬네 말랑하고 따뜻한 명랑한 웅변처럼 별안간 프로포즈를 하네
저기요......떡방앗간에서 우리 만날까요
차가운 기계에서 막 빠져나오는 뜨거운 가래떡 한 줄 들고
빼뺴로 먹기하듯 양끝에서 먹어 들어가기 할까요
그러니까 우리, 한번쯤 만나도 좋은 때까지 말랑하고 명량하게 하번 달려볼까요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창비 2012 )
김선우 /1970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강원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1996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대관령 옛길' 등 10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04년 제49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2007년 현재 '시힘'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으로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도화 아래 잠들다>,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가 있다. 이밖의 작품으로 산문집 <물 밑에 달이 열릴 때>, <김선우의 사물들>, <내 입에 들어온 설탕 같은 키스들>, 동화 <바리공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