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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행복플러스(시와 함께 가는 행복한 삶)
튤립/송찬호 본문
송찬호의「튤립」해설 / 권순진
튤립
송찬호
먼 데 나팔이 울리고 누군가 2층 창문을 열고 외쳤다
경찰이 오고 있다!
그때 우리는 노랑이나 빨강 두건을 쓰고
튤립당을 결성하여
막 선언문을 낭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벌어진 일은 그대가 알고 있는 것과 같다
백만 송이 대지의 등불이 꺼졌다
삶이 무미하다는 걸 보여주듯
소금이 오는 길은 끊어지고
설탕과 담배도 국경을 넘어 달아나버렸다
강낭콩 꼬투리 속에서 태어난
꾀 많은 곰보 소녀는
일곱 개 이야기 조각을 맞춰
귀가 커다란 나라의 수수께끼 여왕이 되었다
수십 년 바다를 떠돌던 사람들이 간간이 육지에 와닿는다는 소식이 들린다
하지만 꾀 많은 소녀가
여왕이 된 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
우리가 천국에 환멸을 느낄 무렵,
경찰도 마법이 풀렸다
하여, 그들 본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돼지로, 빗자루로, 부지깽이로
— 시집『분홍 나막신』(문학과지성사, 2016)
‘튤립’하면 풍차와 함께 네덜란드를 떠올리게 된다. 아닌 게 아니라 튤립이 무리지어 등불 같은 봉우리를 치켜세운 광경은 무슨 정치결사체인 듯 느껴지기도 한다. 다른 꽃들과 달리 튤립은 색깔마다 각기 다른 꽃말을 가지고 있다. 빨간 튤립은 사랑의 고백이지만, 노란 튤립은 헛된 사랑을 의미한다. 그리고 꽃모습이 회교도들이 머리에 두르는 터번(Turban)과 닮았다고 해서 튤립(Tulip)으로 이름 붙여졌다. 튤립은 원래 중앙아시아의 파미르 고원에서 야생상태로 자라던 꽃이었다. 터키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을 거쳐서 16세기 후반에 네덜란드로 이입된 이후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17세기 초 튤립은 교양과 부유함을 드러내는 과시의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17세기는 네덜란드가 세계의 바다를 제패하고 무역으로 경제적 번영을 구가하던 시대였다. 암스테르담은 예술과 사랑, 야망과 욕망으로 뒤얽힌 도시였다. 튤립의 첫 프랑스 수출을 계기로 투기 대상이 되어 튤립의 광풍이 불었다. 튤립의 소유는 곧 부와 교양의 상징이었다.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광기와 탐욕의 어리석음은 파국을 맞기까지 거의 30년간 지속되었다. 튤립 하나만 잘 키우면 대박이 터지고 인생 역전이 실현되는 ‘폰지게임’의 광풍에 뛰어들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와 같은 믿기지 않는 이야기지만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최고점을 찍을 때는 희귀종 튤립 한 뿌리의 가격이 암스테르담의 고급주택 한 채와 맞먹었다. 이후 어느 날 갑자기 값이 폭락하더니 일주일 사이 양파 가격과 같은 수준이 되었다. 이 사건은 세계 최초의 금융투기 거품 사건으로 이후 네덜란드의 국력이 기우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튤립광풍은 투기 거품을 설명하는 “더 멍청한 바보에 대한 기대”의 사례로 흔히 인용된다. 꽃 한 뿌리를 집 한 채 값으로 사는 바보들이 자신보다 더 멍청한 바보가 세상에는 더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심리에 의해 투기거품이 발생한다는 이야기다.
튤립광풍의 대형 음모는 자산의 형태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상승하는 가격의 곡선에 올라타 더 많은 구매자를 끌어들이는 광기에 쌓인 히스테리였다. ‘묻지 마’ 투자는 이후에도 끊이지 않았으며 20세기 말에 휘몰아친 닷컴 붐도 그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주식거래도 비슷한 위험요소를 일부 내재하고 있다. 미래에 예상되는 자산의 가치에 대해 너무 낙관적인 기대를 가질 경우 수요가 급증해 버블현상을 초래한다. 그 낙관적인 기대는 헛된 욕망일 경우가 많다. 최근 IT와 모바일 환경이 촉진시킨 ‘비트코인’에 대한 베팅도 튤립과 매우 흡사한 양상을 띠고 있다.
비트코인은 한 일본인 개발자가 2009년에 개발한 세계 최초의 온라인 가상화폐다. 비트코인은 총량이 유한하고 발행량이 체감돼 금에 비유되곤 한다. 현재 비트코인의 시가총액은 대략 115억 달러에 달한다. 그동안 폭등과 폭락을 거듭하면서도 엄청난 고가행진을 기록하고 있다. 중국이 상승세를 주도하다가 그 바통을 일본과 미국이 이어받았고 우리나라도 광풍에 휘말려들었다. 튤립과는 달리 실제로 사용되기도 하고 어렵게 ‘채굴’과정도 거치는 것이어서 다른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사기꾼들이 서식하기에도 딱 좋은 환경이다. 대박의 헛된 꿈에 사로잡힌 소매 투자자들이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신규유입자의 대다수는 비트코인이 무언지, 알고리즘에 의한 채굴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최대발행량은 왜 제한되어있는지, 기축통화의 수단으로 기능할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지, 미래지향적 플랫폼에 쓰인다는 게 무슨 뜻인지 등 내용들을 하나도 모른 채 덮어놓고 돈만 집어넣는다. 이래서는 삼류 루머에 휩쓸리거나 작전세력, 사기꾼에게 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들 모두는 인간의 절망과 광기를 가장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상황에 처해있다. 그리고 반드시 날개 없는 추락을 맛보게 될 것이다. ‘우리가 천국에 환멸을 느낄 무렵’ ‘경찰도 마법이 풀’릴 것이다. 그때서야 ‘그들 본래 모습으로 되돌아’가리라. ‘돼지로, 빗자루로 부지깽이로’
권순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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