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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편들/시가 있는 하루

편지/ 채호기

시낭송행복플러스 2017. 8. 28. 09:34



채호기의 「편지」감상 / 김기택

 

 

편지

 

  채호기(1957~ )

 

 

맑은 물 아래 또렷한 조약돌들 

당신이 보낸 편지의 글자들 같네. 

강물의 흐름에도 휩쓸려가지 않고 

편안히 가라앉은 조약돌들 

소근소근 속삭이듯 가지런한 글자들의 평온함 

그러나 그중 몇 개의 조약돌은 

물 밖으로 솟아올라 흐름을 거스르네, 

세찬 리듬을 끊으며 내뱉는 글자 몇 개 

그게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이었겠죠, 

그토록 자제하려 애써도 

어느새 평온함을 딛고 삐져나와 

세찬 물살을 가르는 저 돌들이 

당신 가슴에 억지로 가라앉혀둔 말이었겠죠, 

당신의 의지로는 어쩔 수 없는 

심장 속에 두근거리는.

...............................................................................................................................................................................

 

   금년 장마철엔 중부지방에 비가 제법 와서 계곡에는 바위를 끼고 맑은 물이 흐르고 있겠지요. 깨끗하게 씻긴 바위에 앉아 시냇물에 발을 담그고 싶습니다. 찬 기운이 정강이에서 심장으로 정수리로 올라와 서늘하겠지요. 

   혀처럼 부드러운 물이 오랜 세월 동안 깎아 더없이 매끄러운 바위를 생각합니다. 칼이나 끌이 아니라 물줄기가 포옹과 애무로 깎은 바위에서는 핏줄과 살갗과 체온이 느껴지겠지요. 키스와 포옹으로 바위를 깎는 나직하고 간지러운 물소리는 지금도 들리겠지요. 

   한때 흙탕물을 일으키고 바위와 돌을 뒤집던 거친 물살은 지금 어디서 흐르고 있나요? 흰 거품을 일으키며 물살을 마구 튀어 오르게 하던 뾰족하고 모난 돌들은 어디로 갔나요? 깊은 주름과 울퉁불퉁한 수면으로 일렁거리던 물줄기는 이제 순해졌나요? 발음이 달리지 않아 침묵만 풍성한 바위의 말과 물의 문장에 귀 기울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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